희생자 이병희(지도면 신평리)
2013.10.28 13:16
희생자 이병희
서울 을지로에 있는 악기점에서 악기 판매와 수리를 했으며 주로 서울에서 지냈다.
당시 신평리는 서울 출신의 부재지주가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을에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는데, 희생자 이병희는 토지분배과정의 갈등으로 지주의 미움을 받고 있었다.
희생자가 모내기를 하러 집에 와 있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다.
희생자는 전쟁이 나고 인민군이 고양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얼마동안 부역을 하다가 1950년 9월 12일경 가족들과 함께 소만리(지금의 행신동)로 피신을 했다가 9․28 수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9․28 수복 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신평리 치안대(대장 최차성)에 의해 밤중에 끌려 나갔다. 그 후 희생자는 동네 공회당에 일주일 동안 감금당한 후 능곡지서로 끌려갔으며 이 때 희생자의 여동생이 능곡지서로 밥을 날랐다.
밥을 나른 지 일주일 즈음 되던 날, 능곡지서 유치장에 비어 있었다. 그러자 가족들이 희생자의 행방을 수소문을 하여 고양경찰서로 끌려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후 희생자의 처 송기순은 시아버지로부터 일산에 사는 지인에게 쌀 한 말을 주고 밥을 해 주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희생자와 함께 백석리 노첨부락에서 고양경찰서로 끌려갔다가 풀려난 유해응이 ‘이병희와 함께 고양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었으며 어느 날 새벽에 불려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금정굴에서 희생되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1995년 금정굴 발굴 당시 희생자 이병희의 도장이 출토된 바 있다. 이 도장은 희생자 이병희가 직접 파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1995년 10월 금정굴 발굴 중 출토된 희생자 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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