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장수지역사건 종합

2013.07.23 23:02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3396

<국민보도연맹사건>

 

장수지역에서는 국민보도연맹사건과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피해당한 사건이 확인되었다. 1950년 7월 25일 번암면 유정리 정득용 외 1명이 군인들에게 잡혀 희생되었다. 시신은 10여 일 뒤에 수습되었는데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어 옷가지 등으로 확인했다. 다른 한 명은 남원 아영면에 살던 주민으로 알려졌다. 정득용과 함께 잡혔던 매요리 주민은 살아 돌아왔다.

 

<부역혐의 피해>

 

국군 수복 후 인민군 점령기 부역한 혐의를 받았던 주민들이 각 지서를 거쳐 장수경찰서로 이송되었다가 장계면 ‘싸리재’에서 집단희생당했다. 학살은 수복 후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확인된 시기는 1951년 1월 8일, 1월 10일, 2월이다. 이 사건으로 수백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희생자로 확인된 주민은 4명에 불과하다.

김의철은 자수를 하면 부역 사실에 대하여 관용을 베푼다는 말을 듣고 10여 명의 주민들을 설득하여 산서지서에 자수하였다. 이 후 산서지서에 구금되었다가 장수경찰서로 이송되었고 1951년 1월 10일 장수경찰서에서 전주형무소로 이송된다면서 트럭에 실려 나가다가 장계면 '싸리재'에서 총살되었다. 같은 마을 이혁호는 전쟁 전 대한청년단 간부였는데 인민군점령기 분주소에서 부역을 해야 했다. 국군 수복 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장수국민학교로 집결되었다가 17~18명의 청년들과 함께 장수경찰서로 연행되었다가 1951년 2월 7일경 '싸리재'에서 총살되었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보도연맹

1950. 7. 25.

부역

1950. 1.~2.

장계면 싸리재

수백

장수경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