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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구미지역사건 종합

2013.07.09 15:43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2961

<전쟁 전 정치적 학살>

 

구미에서는 1947년 8월 5일 도개면 신림리에 사는 전길상 등 7~8명의 마을 청년들이 박임천 집에서 모임을 갖고 있던 중, 출동한 선산경찰서 경찰관들의 발포로 전길상이 등에 총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6월 8일 열린 제135차 전원위원회에서 당시 경찰의 발포행위가 위법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는다며 표결을 통해 ‘진실규명불능’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미군정 당시에도 비폭력 민간인에 대한 경찰의 발포행위는 불법이었다.

1946년 9월 미군정 사령관 하지는 경찰이 시민들에게 지나치게 폭력적이므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민주경찰은 현행범이 폭력으로 저항하거나 도주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는 민간인이라도 도망하면 사살해도 좋다는 것과는 정반대 명령이다.

그럼에도 진실화해위원회 전원위원회는 ‘도망하는 상황에서 사살당할 수도 있다’는 식의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미군정의 시각으로 볼 때조차 모임에 단순 참가한 비무장 민간인인 전길상을 사살한 경찰의 행위는 당연히 불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국민보도연맹사건>

 

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의 전선이 남하하자 선산경찰서에 의해 주민 200여명이 연행 당했는데, 당시 유치시설이 부족하여 경찰서 내 회의실로 쓰던 가건물까지 이용했다. 선산경찰서는 경찰 후퇴 2~3일 전인 7월 29일경 대구로 이송한다며 주민들을 끌고 나가 총살했다. 희생 장소는 주로 금오산 자락으로 구미시 형곡동 뒷산 남티고개, 금오산 반티모리라고 알려진 고아읍 봉한동 골짜기, 그리고 금오산 순사양지라고 불리는 구미시 남통동과 칠곡군 북삼읍의 경계 등이다. 도개면 신곡리에서만 10여 명이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미군폭격 피해>

 

낙동강 전선의 작전지역에 해당했던 구미지역은 미군의 폭격에 의해서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희생자들 대부분은 후퇴하던 피난민이었다.

1950년 7월 30일 오전 11시 인민군을 피해 피난하던 고아읍 관심리 등 수 천명의 주민들이 선산읍 원리 새도방 나루터를 통해 낙동강을 건너던 중 정찰기가 간 후 나타난 전투기 7대의 폭격과 기총사격으로 수 백명이 사망했다. 당시 국군이 나루터의 배를 파괴했으므로 피난민들은 뗏목 등을 이용해 강을 건너던 중이었다.

1950년 8월 16일 오전 8시 형곡동 상공에 정찰기가 지난 후 10시 B-29폭격기 2개 편대가 융단 폭격을 했으며 이어 전투기들이 폭격을 했다. 당시 마을에는 수백 명의 피난민과 주민들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131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 9시 금전동 와래천변 상공에 나타난 정찰기의 정찰 후 20여 분 뒤 전투기 2개 편대 8대가 피난민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해 수십 명이 사망했다. 희생자로 확인된 주민들은 구평리에서 피난 온 사람들로 모두 17명이 사망했으며 다른 지역 피난민은 파악되지 않았다.

 

<부역혐의 피해>

 

인민군 점령지역이었던 구미에서는 국군 수복 후 부역혐의를 받았던 주민들이 비록 소규모나마 집단희생된 사건이 확인되었다.

수원에서 양복 만드는 일을 하던 김헌직은 전쟁발발 후 외가집이었던 경북 선산군 도개면(동산리 용대미 부락)으로 피난을 갔다가 1950년 9월 말경 수복한 국군 방첩대에게 끌려 가 총살당했다. 시신 수습은 그의 부친이 하였는데, 당시 칠창강변에는 2~3구의 시신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김헌직이 희생된 시기에 도개면 신곡리 민청위원장이었던 신병호도 국군 방첩대에게 연행되어 월림동 신평 냇가에서 희생되었다.

 

이상 구미지역에서 확인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은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미군정

1947. 8. 5.

도개면 신림리

1

경찰

보도연맹

1950. 7. 29.

남티고개 등

선산경찰서

폭격

1950. 7. 30.

원리 새도방나루터

수백

미군

폭격

1950. 8. 16.

형곡동

131

미군

B29 융단폭격

폭격

1950. 8. 16.

금전동 와래천변

수십

미군

부역

1950. 9.말

칠창강변

5

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