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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울산지역사건 종합

2013.07.26 17:16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4005

<전쟁 전 피해>

 

울산에서는 1948년 8월 10일 방어진읍 주민들이 인근 바다에 수장되었다.

진주사범학교를 다니던 장두길은 1946년경 울산농업학교에서 개최된 ‘소미공위축하임정수립촉진울산군민대회(蘇美共委祝賀臨政樹立促進蔚山郡民大會)’에서 연설을 하는 등 당시 울산지역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다. 장두길은 1948년에는 김구 선생과 함께 북한에도 다녀왔으며, 그 뒤 한 단체의 울산지역 책임자를 맡았다고도 한다. 이후 장두길은 1949년 3월 2일 울산제일중학교 근처에 위치한 사무실로 추정되는 곳에서 여러 명과 함께 총에 맞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국민보도연맹사건>

 

울산은 인민군의 점령이 예상되는 지역이 아니었음에도 국민보도연맹사건이 발생했다. 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900여 명의 주민들이 울산지구 CIC와 울산경찰서에 의해 예비검속 당해 연무관에 감금되었다. 이들은 갑, 을, 병으로 등급이 나누어 졌으며 갑과 을에 해당하는 주민들이 8월 5일부터 26일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온양IC와 화리 대운산골짜기와 청량IC삼정리 반정고개(오복재)에서 학살당했다.

현장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희생자들이 가장 많았던 날은 8월 20일이었다. 경찰서 근무자 김씨(김창록) 증언에 따르면, 당시 전체 총살을 지휘한 자들은 사복차림의 특무대였고, 경찰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고 한다.

울산에서는 울산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손학준의 동생 손옥구가 8월 울산경찰서 형사에게 끌려가 인근 야산에서 총살당했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전쟁 전

1948. 8. 10.

방어진읍

전쟁 전

1949. 3. 2.

울산제일중 인근

보도연맹

1950. 8. 5.~26.

대운산골짜기 등

900

C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