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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경산지역사건 종합

2013.06.28 09:06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5064

<전쟁 전 정치적 학살>

 

진실화해위원회는 경산지역에서 1949년 4월부터 10월 사이에 용성면 등 주민 10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확인했다. 한편, 1960년 4․19 직후 경산지역에서 전쟁 전 희생된 것으로 신고한 주민은 모두 72명이다.

 

<국민보도연맹사건>

 

전쟁이 발발한 뒤 경산지역에서도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소집되거나 연행되었다. 이들은 유치장과 무도장에 구금되었다가 일부는 경산시장 자인방면에 있던 수리조합창고에 주둔 중이던 CIC에게 인계되어 경산코발트광산에서 총살당했다. 당시는 아직 인민군의 점령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저질러 진 것이었다. 남은 주민들은 대구형무소로 보내졌다가 전선이 남하하자 재소자들과 함께 헌병과 교도관에게 끌려가 경산코발트광산에서 희생되었다.

 

당시 경산 평산동에 CIC와 3사단 22연대 헌병들이 주둔했다. 경산 청년방위대에서 활동했던 김씨(김한섭)는 “1950년 7~8월경 헌병과, 백골부대원, 경찰들이 형무소에서 끌려온 사람들을 코발트광산으로 데려와 물이 차있던 수직 동굴 앞에서 총살했다. 당시 대구방향에서 30~40명의 사람들을 실은 트럭이 하루에 많게는 8대 이상 왔으며 처형은 약 10일간 지속되었다”라고 증언했다. 코발트광산에는 경산 외에 청도 등에서도 끌려와 희생되었다.

 

경산코발트1.jpg

(2005년 경산 코발트 광산 인근 대원골에서 발굴된 유해의 모습)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전쟁 전

1949. 4.~10.

용성면 등

72

군 또는 경찰

보도연맹

1950. 7.~8.

코발트광산 등

3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