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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고성지역사건 종합

2013.07.26 17:26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4318

<국민보도연맹사건>

 

전쟁이 발발하자 고성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과의 전선이 충청북도에 있던 7월 15일부터 7월 27일 사이 마을 구장·반장 등을 통해 가까운 지서나 경찰서로 소집되었다. 소집된 희생자들이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이 밥을 지어 경찰서로 날랐으나 면회는 허가되지 않았다. 감금된 주민들은 구례지역이 점령당하던 7월 25일부터 8월5일까지 8차례 걸쳐 총살당했는데,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건은 다음과 같다.

 

7월 25일 정계수 등 50여 명이 하일면 춘암리 타래고개에서 총살당했으며, 7월 30일에는 오만수 등 60여 명이 마암면 좌연리 싸리재에서 총살당했다. 같은 날 30여 명은 개천면 원동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 8월 5일에는 이문달 등 30명이 싸리재에서 총살당했다.

 

같은 시기에 통영에서 CID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한씨(한학규)는 1950년 8월에 2주일간 활동했는데, 징발선의 선장으로 있으면서 주민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르면, 헌병대가 징발한 배는 당동마을 주민 11명이 싣고 거제로 가던 중이었는데, 헌병대 문관들이 고성 거류지서 순경들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주민들을 잡아 왔던 것이며 이들을 돌에 묶은 채 배 뒤쪽에서 총을 쏜 후 물에 수장하는 방법으로 살해했다. 당시 징발선 3대가 모두 사람을 죽이는데 쓰였다고 한다.

 

<소개 피해>

 

7월 말 인민군이 고성지역의 읍내를 점령했으나 해변에서는 인민군과 국군의 전선이 계속 유지되었다. 따라서 미군 전투기의 공격과 군인들의 소개작전 공격이 계속되었고 이에 따라 주민들의 피해가 컸다.

1950년 8월 1일 오전 9시 사천 방향에서 날아 온 정찰기와 전투기가 상리면 오산리 다리 위에 모여 있던 50여 명의 주민들에게 기총사격을 가하여 주민 3명이 사망했다. 당시 사천을 방어하던 미 19연대가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하라는 명령에 따라 함안방면으로 철수를 시작한 때였다.

같은 기간, 마치 상륙작전을 하듯이 마을에 진입했던 국군들에 의해 주민들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고성군 하일면 자란도에서 벌어졌다. 1950년 9월 11일경 동력선, 머구리배, 고기잡이배 등 5척이 자란도에 정박하고 군인 수십 명이 배에서 내려 총을 쏘면서 마을주민들을 갯벌에 모이게 하였다. 군인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을 사람들에게 번호를 부르게 한 후 남자들만 군함에 실어 잡아갔다. 그 뒤 이자원 등 나이가 어리거나 또는 나이가 많았던 주민들이 고성군 삼산면 와도에서 풀려났으나 윤형만 등 5명의 청년들은 통영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항남동 멸치창고에 감금되었다가 명정동 뒷산에서 희생되었다.

 

<미군폭격 피해>

 

국군 수복 과정에서 미군 전투기의 공격으로 주민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50년 9월 20일경 미 해군 소속 전투기 2대가 토성면 청간리를 폭격하여 주민 6명이 사망했다. 당시 9월 15일 전후로 함포사격도 심했다. 12월 20일경에는 미 전투기의 고성역 네이팜 폭격으로 인해 100여 명의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부역혐의 피해>

 

고성지역은 인민군의 점령기간이 매우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인민군 측에 부역했다는 혐의를 받은 주민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성경찰서는 1950년 가을 영오면 오서리 등 경찰서로 연행당한 주민들을 경찰서 인근인 개천면 원동골에서 총살했다. 사건 당시 학살 장소에 30여 구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 잡혀갔던 주민 중 처형 현장에서 총을 맞고도 도망쳐서 살아 돌아 온 오서리 주민에 의해 학살 사실이 알려졌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보도연맹

1950. 7. 25.~8. 5.

춘암리 타래고개 등

220

CID 등

폭격

1950. 8. 1.

상리면 오산리 다리

3

미군

폭격

1950. 9. 20.

토성면 청간리

6

미군

소개

1950. 9.

통영 명정동

5

국군

부역

1950. 9.

개천면 원동골

30

고성경찰서

폭격

1950. 12. 20.

고성역

100

미군

네이팜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