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0월 3일 MBC PD수첩 "금정굴 열리다"
2016.12.16 11:05
1995년 10월 3일 MBC PD수첩에서 금정굴 사건과 발굴과정을 1차로 다루었습니다.
증언자 중 강원근 씨가 당시 근무한 곳이 고양경찰서 구파발지서로 표기되어 있지만 정확한 명칭은 신도지서입니다.
자막의 대한파견결사대도 오기입니다. 자세히 들어보시면 대한타공결사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도면과 벽제면에서 활동한 민간치안조직은 대한타공결사대였습니다. 중면의 태극단과 같은 역할을 한 조직이었습니다.
신도면 농업창고에 꽉 차있었던 희생자는 금정굴이 아닌 다른 곳에서 희생된 분들입니다. 당시 언론 자료는 희생자가 200명에 달한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타공결사대에 의해 희생당했다는 주민들이 오금리에 계시는데 유족들은 인민군 측에게 학살당했다고 주장하십니다. 태극단과 타공결사대. 같은 성격의 조직이었지만 미래의 운명은 정반대로 갈립니다.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장 김창룡에 의해서 말이지요.
https://youtu.be/BgKdixkfSYY
태극단장 이장복 씨가 이송을 지원했다고 증언하는 날은 1950년 10월 9일. 태극단은 고양지역 수복직후인 9월 28일부터 고양경찰서 석호진 경위(해병대 배속)를 지휘 아래 경찰서 앞에 있던 지서(파출소)를 이용하여 주민들을 연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0월 6일 사찰계(오늘날 정보과) 주임이 복귀한 뒤 중면 치안대가 재편되었고 그 아래 태극단이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이무영 서장이 인천을 통해 들어 온 날은 9월 24일로 추정되는데 김창룡 등을 비롯해 수복 후 치안을 담당할 경찰 2천여 명이 복귀한 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