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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포천지역사건 종합

2013.07.22 21:21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4227

<인민군 측에 의한 피해>

 

포천지역은 국군 7사단과 2사단, 수도경비사령부가 1950년 6월 25일부터 26일까지 방어를 책임졌다. 6월 25일 첫날 전투에서 포천과 동두천이 무너졌으며, 국군은 6월 26일 의정부에 재집결했다.

최전방이었던 포천에서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피난할 틈도 없었으며, 인민군 점령 후 선출된 인민위원장 등이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주민들이었으므로 잔류된 주민들 대부분은 인민위원회 일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가평과 포천지역의 각 리(里) 인민위원회의 역할은 대개 동일했다고 판단되는데, 당시 포천 어룡리 인민위원회는 (1)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1950년 7월 25일 실행), (2) 양곡 수집(1950년 8월 5일), (3) 의용군 23명 동원(1950년 8월 7일), (4) 인민위원회 경비 징수 등의 역할을 하였다.

한편, 당시 포천에서는 포천 소홀면 대한청년단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인민군의 정보 차단과 교통 혼란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9․28 수복 후에는 부역혐의자 체포와 총살에도 가담하였다. 이와 관련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인민군 후퇴시기 포천내무서에 감금되었던 주민들이 9월 27일 구읍리 뒷산에서 총살당했다.

 

<부역혐의 피해>

 

낙동강 전선을 출발한 국군 7사단은 1950년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포천으로 집결했다. 3연대는 10월 7일, 5연대는 10월 10일에 집결했으며, 8연대는 10월 9일 포천군 신북면 만세교리로 진입했다.(전쟁사 4, 99쪽) 10월 9일경 포천군 신북면 가채리 이용성과 그의 아들 이충의 등 신북면 각 리의 주민들이 치안대에 의해 비행장 공사에 나오라는 명분으로 소집당했다. 주민을 소집한 치안대는 사전에 입수한 정보를 기초로 이들 중 이용성 등 30여 명을 선별하여 무럭고개 골짜기에서 총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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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북면 무럭고개. 골짜기는 오른쪽에 있다. 2008년 6월 27일 조사)

 

<1‧4후퇴 시기 피해>

 

포천에서는 1‧4후퇴 시기에도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피해가 있었다. 경기도 경찰청으로부터 부역자처리 방침이 전달된 후인 1950년 12월 20일경 김봉용 등 선단리 주민 2명이 포천경찰서로 연행되어 희생당했다.

 

김봉용이 희생된 뒤인 1951년 1월 1일경 위 김봉용의 부친 김산이는 치안대 조범용에게 끌려가 설운리 진설모루 다리 밑에서 총격을 받았는데, 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끌려가 마을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뒷산에서 총살당했다.

 

그 뒤 1951년 1월 3일경 포천면의 주민들이 피난을 가던 중 김산이․김봉용의 가족인 윤씨, 김정수 등 7명과 유인태, 유인한 등 유씨네 가족 등 12명이 설운리 하천변인 진설모루 다리 밑으로 끌려 내려갔다.

김산이, 유인태, 유인한 가족 19명은 도민증을 받는다며 조범용을 따라 갔던 것이나 정작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총살을 준비하던 자작리 출신의 치안대원들이었다.

치안대원들은 개머리판과 총대를 헝겊으로 감은 총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주민들을 세운 후 총을 쏘기 시작했다.

당시 총살현장에서 모친 윤씨가 감싸 안고 쓰러지는 바람에 김순배만 기적적으로 생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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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설운리 진설모루 다리가 있던 하천 입구. 옛 모습은 사라졌다. 김덕만씨는 입구로 끌려가는 친구 김순배와 일가족의 모습을 목격했다. 2008년 1월 9일 조사)

 

며칠 뒤 피난 가던 김순배가 현장을 다시 둘러보게 되었는데 가족들의 시신은 눈에 덮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이들 외에도 설운리 서정우, 이착하 등이 인민위원회에 부역했다는 혐의를 받아 마을회관 앞과 진설모루 다리 밑에서 총살당했으며, 신북면 가채리에서도 1․4 후퇴 당시 문씨 집안 일가족이 후퇴로였던 포천 천변에서 희생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상 포천지역에서 확인된 피해는 다음과 같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인공

1950. 9. 27.

구읍리

포천내무서

부역

1950. 10. 9.

무럭고개

30

7사단 추정

1‧4후퇴

1951. 1. 3.

진설모루 다리 밑 등

수십

치안대

국민방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