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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파주지역사건 종합

2013.07.22 20:58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4285

<전쟁 전 정치적 피해>

 

해방 후 남조선노동당 파주군당위원장은 기노춘(奇老春)이었다.(파주군지, 533쪽) 1946년 대구의 10월 항쟁의 영향을 받아 경기도지역에서는 10월 20일부터 22일 사이에 항쟁이 발생했다. 파주에서는 봉기계획이 사전 탐지되어 42명이 체포되었다.(군지, 534쪽) 파주군에서도 고양군, 포천군의 농민데모와 연대하여 1948년 2월 7일과 8일 500여 명의 군중시위가 있었다.(김천영, 연표 한국현대사, 1985, 947~951)

 

<인민군 측에 의한 피해>

 

전쟁 발발 당시 최전방에 속했던 파주지역에서는 국군 1사단이 6월 25일 고랑포와 개성지역이 공격을 받았으며 6월 26일 임진강변 전선에서 철수하였다. 6월 27일에는 봉일천 전방에 제2방어선을 구축하였다가 후퇴하여 6월 28일 저녁부터 6월 29일까지 행주와 이산포 부근에서 한강을 건넜다.

인공시기 파주에서는 내무서에 감금되었던 주민들이 1950년 9월 30일 적성면 두포리 전진교 앞 방공호에서 총살당했다.

 

<부역혐의 피해>

 

국군 수복 후 파주 교하면 청석지서에 감금되었던 문발리 임윤덕, 서패리 최병주, 동패리 황재성 등 주민 수백 명이 경찰에 의해 1950년 10월 23일경 교하면 다율리 청석골에서 집단희생되었다.

산남리에서도 신씨 형제를 포함한 일가족 20여 명이 한강변에서 몰살당했다.

 

이상 파주지역에서 확인된 피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전쟁 전

1946. 10. 20.

42(연행)

경찰

인공

1950. 9. 30.

적성 두포리

인민군

부역

1950. 10.

교하 청석골

수백

경찰

부역

1950. 10.

산남리 한강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