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형무소 터에 다녀왔습니다
2016.07.27 12:01
지난 7월 25일(월) 이재환 작가님을 따라 대전 낭월동 현장을 거쳐 대전형무소 터에 다녀왔습니다.
옛 대전형무소는 항일운동과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그리고 독재에 항거한 민주주의 운동가들의 성역이 되어야 할 곳인데 정작 지금은 반공이라는 편협한 주제 딱 한 가지 이미지만을 갖고 있네요. 그것도 30년은 빛바랜 채로요.
회관 앞에 걸려 있는 사드배치 찬성 플래카드가 보이고요.
같은 민족, 같은 민중 또 다른 누군가의 권리와 생명이 희생되도 알 바 아니라는 이기적인 저 깃발.
식민지 기회주의의 근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보여 씁쓸한 현장이었습니다.
형무소 자리에 지어진 자유회관. 옛 이름이 반공회관이었다고 합니다. 형무소 이전하고 지었을테니까 1961년 쿠데타 후 지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옆에 문화재로 지정된 망루가 남아 있네요.
전국에서 가장 큰 형무소였다고 했는데 남은 터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네요. 보훈단체 회원들이 주로 이용하겠지요? 제 뒤에 반공탑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어요.
5층 높이의 반공탑. 바로 뒤에 우물이 있습니다.
반공탑 뒤 우물입니다. 반공자료에는 수백 구의 시신을 건졌다고 하지만 현장을 목격한 미군 Herman G. Nelson 일병은 모두 29구의 미군을 건졌다고 증언했습니다.(A total of twenty-nine dead American soldiers were fished out of the well.) 반공의 성지가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미군들이 희생된 곳이라는 점 말이지요. 우물이 더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고 하니 여기가 아닐 가능성도 있겠지요. 내부를 보면 그 후로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약간 의문스럽습니다.
철거를 피한 망루입니다.
망루 아래 형무소 안내판인데요, 인민군이 6천명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주장만 싣고 있는게 거슬리네요. 이승만정권에 학살당한 분들도 포함시킨 것 같은데 마치 인민군이 다 죽인 것으로 쓰고 있네요. 이전 시기도 60년대 말이라며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고요.
1950년 7월 대전형무소 양심수들이 학살당한 산내면 골령골 현장입니다. 오른 쪽 가건물에 지난 2015년 발굴된 유골이 모셔져 있습니다. 미처 촬영하지 못했는데 입구에는 "심사위원단 환영합니다. 주민 일동" 플래카드가 걸려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