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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기사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1509.html


“나처럼 한스러운 삶 물려주지 않게 전쟁만은 막아야죠”


[짬] 한국전쟁 희생자 추모시집 펴낸 전숙자씨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작품을 모아 첫 시집 <진실을 노래하라> 펴낸 전숙자 시인.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작품을 모아 첫 시집 <진실을 노래하라> 펴낸 전숙자 시인.


“보도 듣도 못한/ 골령골 진달래꽃은 유난히 붉은데/ 학살지 민들레는 함박웃음 웃고// 너의 발밑 반세기 전/ 자식 죽여 젓 담은 줄 모르고 웬 웃음// 썩는지 삭는지/ 농부들 밭갈이에 몇십 번을 부서졌나.”


대표시를 낭송해달라고 하자 ‘나는 상중이오’(2013)를 눈물을 글썽이며 외우던 시인은 ‘결박을 풀어야 하늘이든 지옥이든 갈 것 아니오’란 대목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대전·순천·진주·고양 등 전국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의 위령제를 돌며 10여년 동안 추모시를 지어 유족들의 한을 달래온 전숙자(70)씨가 작품 160여편을 모아 첫 시집 <진실을 노래하라>(인권평화연구소)를 펴냈다.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인권평화재단에서 전씨를 만났다.


1951년 두살때 대전서 아버지 ‘학살’ 
‘빨갱이 가족’ 낙인에 조부모살이 
글 배우면서부터 설움 적어 ‘시’로 
12년째 전국 위령제 돌며 추모시

2013년 62년만에 부친 무죄 판결 
“주검 찾아 넋이나마 편히 모셨으면”


1948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전씨는 두 돌이 지날 무렵 아버지를 잃고 ‘빨갱이 가족’이란 손가락질과 냉대를 받을 때마다 일기장에 ‘아버지가 돌아오면 이르겠다’며 글을 써왔다고 한다. “부모 없이 험한 세상을 살다 보니 대항할 힘이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요. 글을 배우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일기를 쓰는 습관이 생겼어요.”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그는 인터뷰 내내 “아는 것 없이 생각대로 쓴 것인데 부끄럽다”며 스스로를 낮췄다.

전씨의 시에는 두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끝내 정신줄을 놓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추억과 그리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찾아 평생을 바쳐온 자신의 아픈 가족사가 빼곡히 담겼다.


그의 아버지는 좌익운동을 한 동생의 월북을 도왔다는 이유로 이적행위자로 몰려 1951년 3월4일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25살의 나이에 총살을 당했다. 아버지의 기록을 찾아 전국을 헤맨 그는 2010년 10월에야 육군본부에서 당시 군사법정이 아버지에게 ‘이장 살해’의 누명을 씌워 사형선고를 내린 판결문을 확인하고선 재심을 청구해 2013년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62년 만에 무죄 판결을 한 재판부는 “어떠한 위로의 말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그에게 사과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대전 골령골에서는 한국전쟁 때 전국 형무소의 정치범과 충남지역 보도연맹 회원 등 7천여명이 집단 학살됐다. 사유지라 발굴을 제대로 못해 지금껏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500여명, 발굴된 주검은 50여구에 불과하다.


“아버지가 골령골에서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흘간 정신을 놓고 앓아누웠어요. 37년간 미용실을 하면서 문을 닫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죠. 그 전까지는 아버지가 탈출해서 어디선가 숨어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80년대 이산가족 찾기 방송 때도 아버지가 나오실 것만 같아 화장실에도 못 가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지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버지와 삼촌한테 편지가 오냐’며 전씨 가족에 대한 경찰의 감시와 괴롭힘은 집요했다. 등하굣길까지 따라와 아버지의 친구라며 과자를 사주면서 “너희 집에 언제 누가 왔었냐”고 물어 공포에 떨기도 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저놈들이 우리 아이를 죽이러 온다”며 몽둥이를 들고 어린 손녀를 지켜주었다.


전씨는 11살 때부터 앓아누운 할아버지의 똥빨래까지 도맡아 하며 소녀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할머니는 전쟁 때 끌려가던 아들을 붙잡다 경찰과 우익단체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아 어깨뼈가 골절되고 고막이 터져 평생을 장애인으로 외부와 소통 없이 지냈다. 할아버지는 남편 잃은 젊은 며느리를 억지로 출가시켰다. 친척과 이웃도 혹시나 화가 미칠까봐 가까이하기를 꺼렸다. 그렇게 홀로 견뎌야 했던 전씨의 일기는 60년이 지난 뒤 시가 되어 되살아났다.


“할아버지는 또 바지에 똥을 싸서/ 빨래 함지 머리에 이고 앞뜰 연못으로 가는 길// 남자애들이 자치기 놀이 하는 척/ 내 발을 걸어 넘어졌다// 자치기하던 막대기로 할아버지 바지를 끼워서/ 들고 다니며// ‘어른이 바지에 똥을 싼대요’/ 끽끽대며 소리 질렀다//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 고아라서/ 똥 빨래도 쟤가 한대요/ 쟤네 아버지는 빨갱이래요’”(‘우는 아이’·1960)


할아버지가 세상을 등진 뒤 19살 때 강제로 결혼했다가 28살에 이혼한 그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을 비관해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유해를 찾고 자식들을 고아로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뒤 그는 희생자의 진상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5년 첫 추모시를 낭독한 뒤부터는 전국의 유족회로부터 위령제 때마다 시를 지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매번 추모시를 지을 때마다 희생자의 고통과 유족의 한스러운 심정이 전해져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는 그는 단편소설 <전쟁의 상처>로 2007년 ‘백두산문학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삶이 너무 힘들어 원망도 많이 했다”는 그는 “지금은 동생을 살리려다 죽임을 당하신 아버지가 훌륭하고 올곧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씨는 “6·25전쟁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 없는 고통을 겪었는데,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전쟁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빨리 유해를 발굴해 영혼이라도 결박을 풀어 편안하게 모시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는 그는 “학살지에서 밭갈이를 하면 뼈가 한 움큼씩 나온다는데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골령골 평화공원을 속히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은 추천사에서 “이 시들은 한 편 한 편이 역사책의 한 페이지”라며 “수십만 전쟁 희생자 유족들의 통한을 담아낸 대하소설이고 한국 현대사의 뼈저린 서술”이라고 말했다.

오는 22일 오전 11시 서울 신촌 케이터틀(옛 거구장)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고양/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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