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정굴 학살 규명’ 정부가 나서라(한겨레, 1995. 10. 4)
2013.09.03 17:58
‘금정굴 학살 규명’ 정부가 나서라
8‧15광복 뒤 좌우익 대립과 6‧25 동족상잔으로 이어진 분단의 역사는 우리 겨레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고, 오늘까지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이 달성되고 진정한 민족공동체가 건설될 때까지 분단의 아픔은 지워지지 않겠지만 그중에서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이나 유족들의 피맺힌 원한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동족상잔이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전선에 나선 군인뿐만 아니라 양민들의 억울한 죽음이 더욱 많았기 때문이다. 좌우익을 막론하고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싹튼 증오심이 눈먼 이념의 허울 아래 보복의 악순환을 부르며 돌이켜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일이 너무나 많았다.
거창양민학살사건, 산청함양 양민학살사건, 문경사건, 보도연맹사건이나 제주 4‧3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훗날 참혹한 진상이 밝혀져 일부 명예회복이 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전쟁이 빚은 비극’이라며 진상규명을 외면당한 채 역사속에 묻힌 경우가 적지 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다 희생자 유족들조차 피해의식에 젖어 당시의 상황을 언급하기를 꺼린 탓도 크다.
고양시 금정굴 사건은 좌우익이 번갈아가며 상대편을 학살한 참담한 비극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이 터진 직후 북한군이 내려오면서 좌익세력이 우익단체 단원 50여 명을 처형하자, 북한군이 물러간 뒤 이번에는 우익단체들이 부역자를 색출한다며 수백명에서 천명 가까운 주민들을 모아 대량 학살했다는 것이다. 아직 진상이 명확이 가려지지 않았지만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의 유족이 많이 살아있고,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나와 있는 만큼 멀지 않아 희생자 규모 등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연좌제 등이 두려워 그동안 쉬쉬하며 사건을 덮어두려고 했던 유족들이나 관심을 가진 일부 인사들이 뒤늦게나마 진상규명위원회를 짜고 현장 확인작업을 편 끝에 총알이 박힌 두개골들과 희생자를 묶는데 쓰인 것으로 보이는 전선줄 등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을 많이 찾아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단 비극의 상징인 금정굴 학살사건이 민간단체 아닌 정부 차원에서 발굴이 체계있게 이루어지고, 현장확인을 통한 진상이 철저히 밝혀져야 하며, 이에 따른 조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노력을 통해 뒤늦게나마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넋을 달래고 유족들의 아품을 덜어줌과 함께 역사의 진실을 올바로 기록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다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1995. 10. 4.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