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조병호 김진섭 방용섭 김명산 김만성(송포면 덕이리)
2013.10.27 00:37
조병호는 전쟁 전 송포면 덕이5리 추산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국군 수복 후 조병호는 1950년 10월 10일경 고양경찰서에 자진 출두했으며 그날 늦게 풀려났다. 그러나 다음 날 다시 불려 나갔으며 그 후로 풀려나지 않아 아들 조한복 등이 밥을 고양경찰서로 날랐다.
10월 13일 김명산의 부친이 끌려가는 아들 김명산과 조병호의 모습을 보았다. 당시 이들과 함께 방용섭 등 주민들도 함께 끌려갔다. 얼마 후 이들이 모두 금정굴로 끌려가 총살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제사는 음력 9월 3일(1950년 10월 13일) 지내고 있다.
당시 추산마을에서 끌려간 사람들은 조병호, 김진섭, 방용섭, 김명산, 김만성, 이용우 등 모두 6명이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8 | 희생자 어수갑(김포 하성면 석탄리) | 관리자 | 2013.10.28 | 4864 |
37 | 송병용(사찰계 순경)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4275 |
36 | 이무영(고양경찰서장)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4272 |
35 | 한경옥(수사주임)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3949 |
34 | 강금로(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4057 |
33 | 강신원(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6915 |
32 | 강흥환(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4071 |
31 | 김금룡(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3965 |
30 | 김영배(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3815 |
29 | 김영조(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3872 |
28 | 김정식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3899 |
27 | 김효은(치안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3978 |
26 | 박종철(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3895 |
25 | 성기창(치안대원)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3936 |
24 | 신현갑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4029 |
23 | 신현섭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3933 |
22 | 양재남(의용경찰대원)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4018 |
21 | 엄진섭(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4018 |
20 | 오흥석(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4750 |
19 | 이광희(의용경찰대)의 기억 | 관리자 | 2013.10.29 | 42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