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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희생자 안점봉(당시 59세)은 일제강점기부터 철로반 반장으로 일했으며, 그의 큰 아들 안형노는 장사를 하면서 만주로 독립운동자금을 운반하였다고 한다. 셋째 아들 안상노는 대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특별한 직업이 없는 상태였으며, 손자 안종덕(안형노의 큰 아들)은 성동중학교 3학년, 손자 안종옥(안형노의 둘째 아들)은 국민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둘째 아들 안진노(당시 27세)가 인민군 점령 당시 송포면 민청위원장으로 활동하였는데, 인민군이 후퇴할 당시 함께 월북하였다. 9․28 수복이 되자 문봉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희생자 안점봉과 손자 안종옥이 치안대에 끌려 고양경찰서 송포지서로 연행되었으며 그 후 다시 고양경찰서로 끌려갔다.


희생자 안형노는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피난했는데 그 후 귀향하던 중 일산 부근에서 잡혀 매를 맞은 후 금정굴로 끌려갔다.


희생자 안상노는 희생자 안점봉의 희생 후 역시 치안대에 끌려가 금정굴에서 죽었으나 희생일은 확인되지 않는다.


희생자 안종덕은 생모 최득복이 생후 6개월만에 사망하자 서울 약수동 조부 오촌당숙집에서 안종호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9․28 수복 후 송포의 치안대원들이 서울 약수동까지 찾아와 안종덕을 체포해 갔고 안종호는 항아리 속에 숨어 체포를 피했다.


희생자 안점봉과 함께 있던 희생자 안종옥은 할아버지 안점봉이 10월 9일 금정굴에서 희생된 후에도 송포지서에서 계속 감금된 상태였다. 그 후 치안대에 의해 서울에서 송포로 연행된 안종덕은 안종옥과 송포지서에서 만났으며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는 송포지서 경찰관의 판단에 따라 풀려났으나 집으로 오던 중 다시 마을 치안대에 연행되어 자신들의 집으로 끌려와 밤새 기둥에 묶여 있다가 다음날 새벽에 할미마을 뒷산인 속칭 ‘새벽구덩이’로 끌려가 희생당했다.


9․28 수복 당시 월북했던 둘째 아들 안진노는 1953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4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며 1967년 만기출소하였으나 감옥에서 얻은 질병의 후유증으로 198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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