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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희생자 채기동.jpg


파주시 교하읍 야당리 구름물(운정, 雲井)에 살면서 농사를 짓던 희생자 채기동은 일제강점기 6년 동안 강제징용을 당해 중국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전쟁이 나자 희생자의 가족들은 고양군 백마까지 갔으나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고봉산 아래 누이 집에서 며칠 동안 지내다가 돌아와야 했다. 희생자는 인민군 점령 아래에서 손씨네와 함께 “쌀을 걷어 준” 일이 있었다.


국군 수복 후 희생자가 보리를 심기 위해서 밭을 갈러 나간 후, 군복을 입고 빨간 완장을 찼으며 총을 멘 일산치안대 2명이 “채기동이 어디에 있느냐”면서 찾았다. 그 중 1명은 곽경선(또는 박경선)이었다고 한다.


길을 따라 내려오던 희생자는 그 자리에서 묶여 구장 집으로 끌려갔고 그 후 고양경찰서로 이송되었다. 그러자 희생자의 처는 고양경찰서로 일주일간 밥을 날랐는데 그 동안 밥을 받으면서도 면회를 한 번도 시켜주지 않아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아는 사람을 통해서 알아보니 ‘고양경찰서에 들어 온 적도 없으며 명단도 없다’라고 하여 그 후로는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도시락 나르는 일을 그만 두었다.

 

가족들은 희생자와 사이가 나빴던 손씨 집안 사람과 다투던 중 “빨갱이 자식, 네 애비가 금정굴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