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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한국스레트라는 회사의 서무과장이었던 박근식은 전쟁 전 노량진에 살고 있었는데, 전쟁 발발 직전에 부친을 만나기 위해 고향에 왔다가 한강 다리가 끊기는 바람에 돌아가지 못하고 장항리 묵원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그의 동생 박인식은 전쟁 전부터 마을에 살고 있었다.


전쟁이 나고 인민군이 점령하자 박근식은 배급소에서 일을 했고 박인식은 3일 정도 보초를 서게 되었다.
그 후 9·28 수복이 되자 희생자 박근식, 박인식은 부역이라고 해야 며칠 일 한 것에 불과하므로 별 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던 중 군복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바로 고양경찰서로 끌려갔다.


희생자들이 연행당하자 가족들은 고양경찰서로 면회를 갔다. 누군가로부터 부친의 땅을 주면 고양경찰서에 갇힌 희생자들을 빼 주겠다는 말을 듣긴 했다고 하는데 결국 희생자들은 금정굴에서 총살당하게 되었다.


10월 15일까지 희생자들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므로, 당시 정황으로 보아 박근식, 박인식은 10월 15일에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사건 후 집안의 가재도구는 모두 빼았겼으며 살던 집에서도 나가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