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남(의용경찰대원)의 기억
2013.10.29 15:01
일산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목공생활을 하다가 6년간 기계직공으로 근무하였다.
전쟁 전 민보단원, 정보대원 등으로 있다가 인민군이 들어온 후 7월 중순경 민청에 가입하게 되었다. 상부 명령에 의하여 3일간 부락경비를 했으며, 부상당하고 후퇴하는 인민군을 열차까지 운반했다. 소방대원으로서는 일산시장 농회창고 근방 김응권 집의 화재를 진화하려 출동했었다.
그 뒤 병을 핑계로 누워 있다가 8월 5일경 처가인 파주군 교하면 야당리에 피신하고 9월 10일경 다시 일산에 돌아왔으나 다시 의용군을 피하기 위하여 처가로 가서 숨어 있었다.
인민군이 후퇴한 후에는 의용경찰대원으로 있었는데, 10월 9일 피검자 40여 명을 총살할 때 의용경찰대 간부 이진이 함께 가지고 하여 갔다. 경찰관 1명, 태극단원, 의용경찰대원들이 감내고개 금광굴에서 총살한 후 시체는 굴속에 넣어 버렸다. 당시 총살집행은 하지 않고 경비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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