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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희생자 고춘선(은평면 불광리)

2013.10.28 13:30

관리자 조회 수:9383

희생자 고춘선(당시 41세)은 은평면 불광리(현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새장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당시 불광리는 원불광리, 초불광리, 새장골, 웃말, 박새기(박석고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고춘선의 집안은 17세기 말부터 불광리에 자리잡고 살았다고 한다.


고춘선의 사촌 고영길이 당시 연희전문대 학생이었고, 고영섭이 경성대학 학생이었다.

고영길은 같은 마을인 새장골에 살았고, 고영섭은 박석고개에 살았다.

이들이 살던 집은 당시 큰 기와집이었는데 안방은 서울, 건너방은 고양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집이었다.

 

이들이 인민군 후퇴 당시 월북하였다. 2002년 5월 9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6촌 고천식은 김책공업대학 교수가 되었다.

9․28 수복 후 고춘선은 월북한 고영길, 고영섭을 대신해서 구파발 삼거리에 있던 신도지서로 연행되었다.

당시 아들 고재식이 일주일 동안 밥과 옷을 날랐는데, 갈아입은 옷에는 고문으로 인한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

신도지서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잡혀 있었다.

 

1950년 10월 8일(음력 8월 27일) 신도지서에서 어디론가 끌려갔다. 신도지서에 갇혀 있던 주민들은 고양경찰서로 이송되었다고 하므로 금정굴에서 희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외에 고영순(위 고영길의 동생)도 피살되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구체적인 사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