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심재천(송포면 법곶리)
2013.10.27 00:46
희생자 심재천은 송포면 법곶리 동촌마을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전쟁 전 농기구와 비료를 준다고 해서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고 한다.
9․28 수복 후 희생자는 가족들과 함께 보리를 털고 있었는데 전혀 얼굴을 모르는 치안대가 희생자에게 같이 갈 것을 요구하였고 희생자는 이에 응하여 따라갔다. 가족들이 이 장면을 모두 목격하였다.
당시 동촌마을에서 함께 끌려간 주민들은 노춘석, 노인성, 심문현의 형, 심기만 등 6~7명이었다.
희생자가 처음으로 연행당한 곳은 송포지서였는데, 희생자는 ‘죄 없는 사람도 3일은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데 아무런 부역을 하지 않았으니 곧 풀려난다.’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들은 며칠 동안 조사를 받고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고양경찰서로 넘겨졌으며 이 사실은 함께 끌려간 마을 주민들의 가족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심재천이 고양경찰서로 이송된 후 모친 윤기분이 도시락을 날랐는데 그러던 어느 날 ‘가져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그래도 혹시나 하고 도시락을 가져갔더니 누구 것인지 모를 머리카락을 밥에 짓이겨서 다시 담은 도시락을 돌려받았다고 한다.
희생자의 동생 심재서는 벽제 관산리로 시집간 누이 집을 가면서 모친이 금정굴 방향을 가리키면서 “일본 놈들이 금을 캐다가 만 굴이 있는데 네 큰 형이 전기줄로 묶여서 끌려 가 거기에서 죽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모친은 사건 얼마 후 홧병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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