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김용남(송포면 가좌리)
2013.10.27 00:21
희생자는 전쟁 전부터 송포면사무소 일을 보았으며 인민군이 점령하자 다시 면사무소 일을 보게 되었다.
9․28 수복이 되자 큰 부역행위를 한 것이 아니므로 직접 치안대에 가서 자수했는데 돌아가라고 하여 귀가했다. 그러나 1950년 10월 9일 치안대 김종근 등이 공포를 쏘며 김용남과 그 가족들을 끌고 가려 하였으나 김용남은 “내일 자수할테니 기다려 달라”라고 사정하여 그날은 넘길 수 있었다. 약속대로 김용남은 가좌리 치안대에 자수하였고 이튿 날 고양경찰서로 이송되었다.
희생자가 굶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큰 딸 김옥년이 밥을 해 갔는데, 10월 11일 밥을 그만 가져오라는 쪽지가 빈 밥그릇에 들어있었고 다음 날인 10월 12일에는 도시락을 받지 않았다.
얼마 후 치안대에서 추수한 곡식을 모두 압수해 가버렸고 집에서는 희생자와 소식이 끊어진 음력 9월 1일(1950년 10월 11일)에 제사를 모시고 있다. 가족들은 20년이 넘은 1970년에야 금정굴에서 희생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 때 받은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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