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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이기현(중면 부면장)의 기억

2013.10.29 16:29

관리자 조회 수:2112

1945년 10월 1일부터 중면 부면장의 직에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6월 27일경 부산으로 피난하였으며, 10월 6일 복귀하였다.


국군 수복 후 부역혐의자 검거는 치안대에서 다수 하였으나 경찰 진주시까지 구속하였다가 경찰에 인계하였다고 듣었다. 치안대가 직접 처단까지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의용경찰대는 경찰의 인원이 부족하므로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결성된 것이었는데 초기에는 고맙게 여겼으나 점차 불안과 공포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 이유는 이들 중 인민군 점령 당시 협력하던 자들이 의용경찰대에 가입하여 여전히 날뛰었다는 점, 이들이 자신들의 죄상을 숨기기 위해 무관한 자를 처단한 경우가 있다는 점, 부역정도가 경미한 주민들도 즉결처분하므로 주민 누구나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른다는 점, 검거당한 자의 죄상이 의용경찰대원보다 덜한 경우가 있었다는 점 등이다.


시국대책위원회에 대해서 1950년 10월 13일경 고양군수로부터 고제호(高第號)로 ‘역산처분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역산의 자유처분을 금지하고 당분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보관 및 관리 토록하라’는 통보였다.


이에 따라 면장은 시국대책위원회장 이경하를 만나 역산문제에 관하여 군수의 지시내용을 말하였더니 “우리는 경찰서로 인계 하겠다”라고 하여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시국대책위원회와 경찰서 당사자 사이에서만 역산처리 과정에 대해 알고 있었으므로 그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일반 주민들은 20여 호가 화재, 폭격 등으로 파괴되어 겨울나기 긴급대책이 필요한 사정이므로 역산의 분배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기도 하였다.

 

인민군 측에 적극 협력한 당사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데는 별 견해가 없으나 그 친척 또는 유가족의 재산까지 몰수하는 데에는 가혹하다는 평이 있었다.


주민 총살(즉결처분)에 대해서 인민군에게 적극 협력한 자는 당연하다 할 것이나 친척을 대신 처벌한 것은 가혹하다는 평이 있다.
중면은 물론 인근의 면에서도 다수의 인명이 처단되었고 현재에도 다수의 인원이 구속되어 있어 주민들이 여전히 불안과 공포에 쌓여 있다. 하루 빨리 민심이 안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