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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김○○의 기억

2013.10.29 16:23

관리자 조회 수:1386

1950년 2월 민주학련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서울동덕여자학교를 중퇴하고 집안일을 돌보고 있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이 점령하자 여자 의용군을 피하기 위해 여성동맹에 가입했으며, 인민학교 교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9․28 수복 후 10월 5일 일산리 치안대원에게 체포되었다.

치안대원들은 부친을 체포하러 왔으나 부친이 집에 없자 부친을 찾아내라며 모친, 본인, 동생 등 3명을 고양경찰서로 잡혀가게 된 것이었다.


같은 날 12시경 고양경찰서 경무주임 고영준과 2명의 경찰이 가택수사를 한다며 본인을 끌고 갔으며 가택수색을 마친 후 경무주임이 권총으로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며 정조를 유린하였다. 오전에 집에서 잡혀갈 때는 가구들이 정돈된 상태였는데, 일부 물건들은 손실되고 흐트러져 있었다.


10월 6일 치안대 대원에게 취조를 받았으며, 10월 7일 CIC로 넘긴다며 본인과 부친을 포함하여 14명이 불려나갔다.

경무주임 외 5명의 경찰에 의해 불려나간 14명은 일산리를 떠나 봉일천 방향으로 가던 중 부친과 본인의 포박은 풀어주면서 경찰 1명과 함께 벽제지서까지 왔다.

 

뒤쳐져 보이지 않았던 주민 12명과 경찰관들은 본인이 벽제지서에 도착한지 10여 분 후 경무주임 등 경찰 일행만 도착했고, 12명의 주민들은 오던 도중 어디선가 처분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당시가 오후 3, 4시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