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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최우용의 기억

2013.10.29 16:18

관리자 조회 수:1462

중면 일산리에서 잡화상을 경영하면서 민보단과 대한청년단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6일 민보단, 대한청년단에서 일한 자가 인민공화국에 협력하지 않으면 반동분자로 규정하고 재산을 몰수한다고 하므로 일산리 민청에 가입하였다.


일산리 민청위원장 피원용으로부터 고양군 민청에서 식량을 징발하여 오라는 지시에 의하여 본인과 이상옥(李相玉), 김영조 및 홍모 등과 4명이 일산리 시장에 임하여 각호를 내방하여 백미 3두를 징발하여 일산리 민청에 납부한 사실이 있다.

자위대원으로서 5일간 전화선을 경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