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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이진(의용경찰대)의 기억

2013.10.29 16:09

관리자 조회 수:1474

대동청년단 고양군 중면지단 중산분단 별동단원, 대한청년단 경기도 남부단 감찰부 심사계장으로 있었다.


6․25 전쟁으로 충남 괴산에 피신하였고 9월 13일 고향으로 돌아와 형 이정의 집에 숨어 있었다. 인민군이 후퇴할 시기에 형 이완, 이정이 살해당했다.


9월 20일경 국군이 진주했을 때, 능곡으로 가 치안대에 가담했으며 10월 초순부터 고양경찰서 의용경찰대원으로 경찰에 협력해 오다 견습경찰관으로 근무하였다. 고양경찰서 사찰주임 명령에 의해서 인민군에게 협력하였다는 주민을 3회에 걸쳐 5~6명을 총살했으며 모두 60여 명이 총살당하는 현장에 있었다.


10월 10일경 강흥환이 당시 취조계에서 연행한 80여 명 중 47명을 사형시킨다고 하면서 가라고 하여 “그러면 형님 두 분의 원수를 갚게 되리라”하고 동행한 것이었다.

 

10월 13일경에도 차경운이 6명을 총살한다면서 갔다 오라고 하여 따라갔다 왔다. 10월 14일경 형들의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으며, 10월 15일경 장례식을 치르고 나오자 고양경찰서 사찰계의 지시로 또 10명을 폐금광에서 총살했다.


첫번째 총살에 참여한 의용경찰대원은 본인 외 강흥환, 이광희, 양재남 등 이었고, 태극단장 외 태극단원 10여 명, 고양경찰서 사찰계 송순경 등이 총살에 가담했다. 두번째는 의용경찰대 강흥환, 고양경찰서 사찰계 4명, 태극단장과 단원 5명이 가담했다. 세번째는 의용경찰대 강금로, 피원용, 강흥환, 고양경찰서 사찰계 송형사 외 3명이 가담했다.


총살은 1미터 떨어진 상태에서 M1총으로 각각 1명씩 사살했다. 피살자 중 면식이 있는 사람은 25일 총살당한 서병철뿐이고, 이들의 죄상을 확실히 모르는 상태에서 고양경찰서 사찰주임의 명령대로 집행하였다.


피살자들은 고양경찰서 사찰계에서 A, B, C로 분류하여 A급은 총살하고, B급은 유치하여 두고, C급은 석방했다. 총살은 고양경찰서원, 의용경찰대원, 태극단원이 했는데, 25일 총살에는 태극단이 군에 편입되었으므로 경찰관과 의용경찰대원이 집행했다. 당시 사찰주임과 고양경찰서장이 직접 참가했으며 서장도 직접 2명을 총살하였다.


당시 총살에 대해서는 서장의 명령이 있었고 계엄령이 선포된 지구였으므로 합법적인 것으로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