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이은칠(의용경찰대)의 기억

2013.10.29 16:07

관리자 조회 수:4101

전쟁 전 대동청년단 고양군단부 선전부장, 대한청년단 경기도 남부단부 선전부장, 고양군 민보단 부단장 등 청년운동을 하였다.


인민군이 점령한 직후 6월 29일 요청에 의해 인민군을 환영하는 내용의 벽보 8매를 만들어 붙였으며 7월 1일부터 3일까지 고양군 중면 인민위원회 선전부장의 직책을 맡았다. 7월 7일 일산보안서(내무서) 분주소장의 지시에 의해 대한청년단 간부였던 김남식(전 대한청년단장), 이병학, 이건식, 차경운, 이학동을 검거했다.


그 뒤 부역을 피하기 위해 양평군 화도면 송천리에서 피신했다가 국군이 수복함에 따라 10월 5일 고양군으로 돌아왔으며 10월 7일 의용경찰대에 입대하여 부대장으로 있다가 10월 15일 사임하였다.

 

의용경찰대가 부역자들을 검거하게 된 것은 경찰간부 등은 피난하여 당시 상황을 잘 모르므로 주로 지하공작을 하던 태극단원과 청년들이 제공한 정보에 의한 것이었으며, 10월 20일경 부역자들의 명부가 발견되어 그에 따라 검거했다는 말도 있었다.

 

당시 부역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조병세, 강흥환 등으로 기억한다. 조병세, 강흥환은 자위대장, 자위대원으로 활동했으나 우익인사들을 암암리에 도와줬다고 들었다.


10월 5일경 이미 치안대에서 검거한 주민이 70여 명에 달했으며, 10월 6일경 사찰주임이 20여 명의 경찰관을 데리고 온 후 치안대를 의용경찰대로 개편하였다.

 

검거된 주민들은 고양경찰서 관내 각 지서에서 체포하여 왔으므로 일산리 주민들만이 아니라 고양군 전체 관내 출신 주민들이 잡혀 온 것이었다. 이들은 10월 10일경부터 25일경까지 즉결처분당했다.


1950년 10월 18일 오후 6시경 중면 주엽리에 오후 2시경 빨치산 대원이 출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고양의용경찰대 6명과 본인 등 모두 7명이 출동하여 동 주엽리에서 좌익분자 3명(성명불상)을 총살한 사실이 있다.


당시 출동한 자는 이병학(시국대책위원회), 엄진섭, 오형구, 김효은, 신현섭, 장귀동, 최만재(주엽리 치안대원)였다. 피살자는 장항리 2명, 주엽리 1명이었다. 총살은 이병학, 장귀동, 최만재가 했으며 본인은 사건 후 현장을 목격한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