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득(의용경찰대)의 기억
2013.10.29 16:04
6․25 발발 전에 대한청년단 풍리 단장, 대한청년단 남부단 정보책임자로 있었다.
이 때문에 인민군이 점령하기 직전 1950년 6월 28일 서울로 피신했다가 일산리 유광열(柳光烈)의 권유로 5일 후에 귀가하였으나 7월 20일경 고양경찰서 일산분주소원에게 체포되어 8일간 취조를 받고 석방되었다.
그 뒤 생명의 위협을 느껴 신분 보장도 받을 겸, 또한 주민들의 요청도 있어 7월 말경 농민위원회와 민청에 가입하였다. 인민군 후퇴 당시 비협력자라고 하여 피신해야 했으며 약 2백만원 상당의 재산을 강탈당했다.
국군 수복 후 치안대원과 의용경찰대원으로 활동하였는데, 주로 경비를 하였고 때때로 경찰관이 취조할 때 이를 보조하였다. 이때 좌익분자를 다수 검거하여 처단한 사실이 있어 합동수사본부에 구속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재판결과 부역자로 유죄 판결을 받아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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