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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희생자 이금현(지도면 행주외리)

2013.10.28 13:22

관리자 조회 수:1506

행주외리 소애촌(小涯村)에 살던 희생자 이금현의 남편 이창영은 여자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의 딸들을 서울의 중학교로 보낼 정도로 경제적 여유와 사회적 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학식도 갖추고 있어 마을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이 때문에 인민군 점령 아래에서 리 인민위원장의 일을 보게 되었다. 당시 둘째 딸 이정남은 리 여성동맹위원장을 맡았었다고 한다.


행주지역은 1950년 9월 20일경 수복이 되었는데, 수복 직후 위 이창영과 이정남, 권태윤(이정남 남편)은 부역혐의를 받아 체포되어 서울로 이송되었고, 10월 15일경 희생자 이금현을 비롯한 남은 가족들이 치안대에게 끌려가 마을공회당과 한강변의 얼음창고에서 고문을 당했으며 그 후 이금현만 다시 능곡지서로 끌려갔다.

 

희생자가 끌려가자 그의 아들 이의모(당시 16세)가 능곡지서로 밥을 날랐으나 며칠 후 일산의 고양경찰서로 이송되어 밥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 후 금정굴로 갔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남은 가족들은 부모를 잃고 방치되어 있던 중 부산으로 피난했던 큰 딸 이영재가 돌아와 데리고 갔다. 큰 딸 이영재는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서 국군 수복 초기 해병대와 함께 돌아왔다.


희생자의 남편 이창영은 군사재판을 받아 사형을 선고 받았다고 하는데 판결문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의 딸 이정남과 사위 권태윤은 서울로 연행되어 용산에 있던 합동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석방되었다.


사건 후 이창영 소유의 재산은 누군가에 의해 처분되었는데, 고양경찰서의 지휘를 받던 고양군 시국대책위원회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