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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화전리 지희덕은 마을에서 지덕문으로 불렀으며, 방앗간 일과 전기관련 일을 하면서 대한청년단과 국민보도연맹에 함께 가입해 있었다고 한다.


1950년 10월 초 지희덕은 치안대 사무실로 쓰였던 같은 마을 주민 김광식의 사랑채로 끌려가 감금당했다. 20여 일 동안 감금당했으며 그 동안 식사는 가족들이 날랐다. 아들 지영호는 사랑채 마루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부친 지희덕을 보았다.


지희덕은 1950년 10월 10일경 같은 마을 주민 유순범, 향동리 주민 8명과 함께 의용경찰대에 의해 화전리 뒷산 계곡에서 총살당했다.

 

이들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오후 3~4시경 지희덕의 부친은 손자 지영호를 데리고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현장에는 총살당한 지희덕 외에도 3~4구의 시신이 방치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