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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국군 수복을 전후하여 희생자들이 원당면 주교리에서 은평면 북가좌리로 피난하였으나 치안대에 의해 원당으로 다시 끌려왔다.

 

희생자 박상하의 큰형 박○○은 서울에서 교사를 하였는데 원당까지 끌려왔다가 금정굴로 끌려가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제자들에 의해 풀려났으나 박중원, 박상하는 희생당하였다.


희생자 박중원의 며느리 신연호는 유치창고에서 밥을 해 오라고 해서 희생자의 동생을 업은 채 밥을 날랐다.

1950년 10월 4일 서병규가 치안대에 의해 고양경찰서로 끌려가는 박중원, 박상하의 모습을 목격한 사실, 1995년 금정굴 발굴시 희생자의 도장이 바닥부근에서 발견된 사실로 보아 희생자들은 초기인 10월 9일경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용경찰대원 조병태가 박상하와 그의 부친 박중원의 희생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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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굴에서 발굴된 도장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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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박중원(이병순 유족 제공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