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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희생자 김호연(벽제면 내유리)

2013.10.27 00:54

관리자 조회 수:1463

희생자 김호연은 파주지역과 접해있던 벽제면 내유리 신선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전쟁 발발 전 이웃 마을인 파주군 조리면 장곡2리 송영덕이 좌익활동을 했는데, 희생자가 살던 내유리 신선마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청년들끼리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9·28 수복 직후에 구장 이흥열 등 마을 일을 보던 사람들이 군용차가 지나는 모습을 보고 각자 도로에 나와서 만세를 불렀다.
희생자는 노동당에 가입한 것 때문에 자수를 해야한다고 하면서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관산파출소로 갔다. 그 후 일주일 정도를 희생자의 모친과 조카 김동철이 파출소에 밥을 전해주고 빈 그릇이 나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왔다. 조카 김동철은 밥을 나르는 동안 인근 산에서 부역자를 총살하는 소리를 들었으며, 같은 마을 김상길도 그의 형 김상국의 밥을 나르던 모습을 보았다. 그러던 며칠 후 관산파출소에서 희생자가 고양경찰서로 이송되었으니 고양경찰서로 밥을 가져가라고 했다.


고양경찰서까지는 거리가 멀었으므로 큰 조카 김동열이 밥을 날랐다. 10일정도 밥을 나르던 어느날 밥을 받지 않았으며, 김호연이 금정굴에서 희생되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집안 어른들과 친인척들이 금정굴로 갔었는데 입구를 폭파시켰는지 흙으로 모두 덮은 후여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돌아왔다.


희생자는 사건 초기 일주일 정도 관산지서에서 감금되어 있었고, 고양경찰서로 이송된 후 10일이 지나자 밥을 그만 날랐으므로 10월 17일경 희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내유리 주민들 중 금정굴에서 희생된 주민은 김호연 외에도 김상국, 이○○(이병호의 부친)이 있다고 하며, 고양경찰서로 끌려가기 전 마을에서 희생된 주민들이 더 많았다고 하나 당시 누가 희생당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