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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희생자 김상국(벽제면 내유리)

2013.10.27 00:53

관리자 조회 수:6076

벽제면 내유리 신선마을에 살면서 농사를 짓던 김상국은 고양지역과 인접해 있던 파주군 조리면의 좌익 송영덕에 의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었다. 내유리 인근에서는 전쟁 발발 전 국민보도연맹원들이 끌려나와 매를 맞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희생자의 형 김상진 역시 국민보도연맹원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전쟁 발발 직전부터 행방불명 상태로서 피살당했는지 알 수 없다.


희생자도 전쟁 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인민군 점령 아래에서 의용군을 가던가 아니면 남아서 부역을 하던가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당하였다. 결국 희생자는 의용군에 가지 않기 위해 부역을 선택하였다.

부역을 한 주민들은 주로 곡물의 수를 세는 일을 하였는데 국민보도연맹의 생존자들과 함께 그 일에 참여한 사람들은 국군 수복 직후 모두 살해당했다.


9·28 수복 직후 마을에 미군이 들어오고 3~4일 사이에 국민보도연맹원, 부역혐의자들이 모두 잡혔으며 김상국도 이 때 끌려갔다. 희생자는 수복되고 삼일 째인 10월 1일경에 잡혔다.


수복이 되자 치안대가 김상국을 잡으러 왔는데 그 때 큰 집으로 피신해서 없자 대신 부친 김영재를 내유2리 치안대 사무실로 잡아갔다가 풀어주었으며 이 소식을 들은 희생자가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와 치안대 이종율에게 바로 묶여 끌려갔다.


당시 가족들은 매나 몇 대 맞고 풀려나올 줄 알고 있었으며 부친 김영재가 “너 가도 되냐?”고 하자 희생자는 “나는 죄가 없어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라며 치안대를 따라갔다. 김상국은 고양경찰서로 바로 끌려갔으며 가족들이 교대로 7~10일 동안 밥을 날랐다.


당시 고양경찰서에는 면회를 온 사람들이 많았으며 밥을 가지고 가서 접수를 시키고 기다리면 이름을 불렀고 밥을 주고 다시 빈 그릇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곤 하였다. 마지막으로 밥을 나른 가족은 희생자의 처였는데 “(이제는 김상국이) 없으니까 밥을 도로 가져가라”는 말을 듣고 그냥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그 후 가족들은 치안대가 부역혐의자들을 쏴 죽여서 한강에 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당시로서는 그러려니 하면서 참고 있어야 했다.


당시 마을에서 희생자와 함께 연행되었던 이웃 김구연은 쌀 수십 가마를 주고 풀려났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