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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조병태(의용경찰대)의 기억

2013.10.29 16:16

관리자 조회 수:3578

일산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일산리에서 식료품점을 경영하였으며, 전쟁 전 민보단원, 대한청년단 감찰원으로 있었다.

 

인민군이 고양지역을 점령하자 6월 28일 능곡까지 피난했다가 7월 1일 일산으로 돌아왔다. 그 뒤 벽제면 성석리에 10일간 의용군 모집을 피해서 숨어 있었다. 그 뒤 9월 10일경 일산리 소방대에 편입되어 9월 28일까지 있었다. 형 조병세가 자위대장이었으므로 다른 단체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었다.


인민군 점령기 우익의 프락치로 활동한 사람은 김남식, 심창섭, 강성환이었으며, 인민군 측에 연행당할 상황에서 구해 준 사람은 김남식, 김경진, 안병무, 고공운, 강춘복, 이병택, 안병기, 이신금, 이승권, 강성환, 유백수, 이상련이었다.


1950년 10월 초순 고양경찰서 경찰이 공식 복귀하기 전 일산리에서 12명의 청년들이 치안활동을 하여 7명을 체포하였으며 이들을 능곡에 있던 미군 CIC에 넘겼다.

 

경찰이 공식 복귀한 후에는 고양경찰서에 정보부서가 생겼으며 전 대한청년단 간부였던 김완배가 책임자였다. 김완배가 수집한 정보에 따라 치안대와 고양경찰서 사찰계 경찰이 주민들을 체포하였다.


10월 6일 고양경찰서 의용경찰대에 입대하여 10월 10일경 사찰계 순경 1명, 태극단원 5~6명, 의용경찰대원 강흥환, 이광희, 양재남, 김이성, 이진, 이영환과 함께 일산리 안희준(安熙俊) 외 46명을 총살하였다. 당시 희생자 중 알고 있는 주민으로 안희준, 박상하, 박상하의 부친, 이영창이 있었다.


10월 22일 파주군 사람 등 모르는 사람 5명을 총살시켰다. 본인이 총살한 것은 2회 뿐이다.


고양경찰서에는 감옥 4개소에 80여 명, 그 앞 창고에 180여 명, 도합 260여 명이 있었다.

고양경찰서에서는 27일까지 검찰청으로 송청한 사실은 없는 것 같다. 매일 15명가량이 연행되는 것 같았다.

피의자는 고양경찰서원들도 체포하여 오고 우리 의용경찰대원만으로도 체포하고 있다.

의용경찰대원은 고양경찰서장이 명령하고 있다. 의용경찰대원도 총과 실탄을 받고 있다.

인민군에 협조한 자와 그 외 그 가족까지도 총살을 시키고 있는데, 가족까지 총살시키는 연유는 모른다.

가산 몰수에 대하여본 당사자 소유는 물론 가족 재산까지도 몰수하고 있다.

1회 희생당한 47명에는 일산리 안희준, 임종태, 김석권, 이경학, 이종안의 모, 이영창, 중면 동고리 이기봉 장녀, 박상하, 박상하 부, 장안리 한요수 등이 있었다.


총살하러 간 자는 고양경찰서 사찰계 김경사, 박용길 경사, 송순경 등, 의용경찰대원으로 강흥환, 양재남, 이광희 등과 일산 태극단장 외 4인이다. 2차 총살당한 자 중 파주에 거주하는 자만 알고 그 외 4명은 전연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