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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제주지역사건 종합

2013.07.26 21:01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1446

<전쟁 전 피해>

 

1947년 3․1절 행사 중 미군정의 발포로 시발된 1948년 제주 4․3항쟁이 발생하자 미군정은 이를 진압한다는 빌미로 제주도의 산 중턱 마을을 소개하였고 이 과정에서 3만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희생당했다. 주민들은 토벌부대를 피해 산에 숨어 있다가 학살당하기도 했지만 소개되어 있던 수용소에서도 학살당했다.

 

<국민보도연맹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은 제주도에서도 발생했다.

제주지역에서는 1949년 11월 기준 5,283명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있었는데, 제주‧서귀포‧모슬포‧성산포 등 4개 경찰서 관할 지역별로 본부가, 기서 관할 지역별로 지부가 조직되어 있었다. 당시 미 대사관은 제주의 국민보도연맹 가입자가 27,000명이며 전쟁 발발 후 700명의 국민보도연맹 지도자들이 체포당했다고 보고하였다. 한편, 1950년 8월 4일 현재 제주도내 각 경찰서에 갇힌 주민들은 모두 840명이었다고 한다.(박명림 339)

한국전쟁 발발 후 제주도 경찰국 산하 4개 경찰서에 각각 연행되어 학살된 희생자 수는 제주경찰서 400~500명, 서귀포경찰서 250명, 모슬포경찰서 210~250명, 성산포경찰서 6명으로 거의 1천 명에 달했다.

제주 모슬포 경찰서 관내에서 예비검속된 주민 344명 중 252명이 두 차례에 걸쳐 희생되었다. 1차는 1950년 7월 16일부터 20일에, 2차는 8월 20일에 모슬포에 주둔하던 해병 제3대대(대대장 김윤근 소령)에 의해 남제주군 대정면 상모리 ‘섯알오름’ 탄약고 굴속에서 집단희생되었다. 모슬포경찰서가 제주도경찰국장에게 보낸 문서인 「예비검속자명부 제출의 건」(1950년 9월 4일)에는 7월 16일 63명을 ‘군 송치 처단’한 것으로 기재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중 218명의 희생자 신원을 확인하였다.

사건 직후인 1950년 8월 군경의 출입통제로 시신 수습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1956년 3월 군부대 확장공사 과정에서 유골이 노출되었다. 이후 희생자 감금지역에 따라 구분된 두 부류의 유족들에 의해 두 차례에 걸쳐 두 곳에 유골이 수습되었다. 한림 어업창고에 감금되었던 희생자 63명은 1956년 3월 30일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2754번지인 ‘만멩디공동장지’에 안장되었으며, 모슬포 절간고구마창고에 감금되었던 희생자 132명은 5월 18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586번지인 ‘백조일손지지’에 안장되었다. 하지만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부에 의해 묘비가 파괴되었고, ‘공동묘역해체명령’을 받았다.

제주에 있어서 7월의 희생자들은 국민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살해 명령 시기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영호남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사건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보인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전쟁 전

1948.

30,000

보도연맹

1950.

섯알오름 등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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