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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순천지역사건 종합

2013.07.24 22:41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1612

<전쟁 전 피해>

 

여순사건 직후인 1948년 10월 27일에는 순천(보성) 낙안면에 진입한 진압군에 의해 주민 수십 명이 학살당했다. 토벌국군에 의한 피해는 1년이 지난 뒤에도 다시 발생했다. 1949년 10월 22일 마산 15연대 군인들이 순천 송광면 월산리에 진입해 마을 주민들을 담배건조장으로 집결시킨 후 이영근 등 9명을 질등재로 끌고 가 한 명씩 목과 등을 총검으로 질러 살해했다.

 

<국민보도연맹사건>

 

순천에서는 1950년 1월 국민보도연맹이 조직되었는데 당시 발대식에 참석하기 위해 소집되었던 주민들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월 8일 서면 면장 정기영, 서면 판교리 구장 박병구 등 11명이 함께 국민보도연맹 발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면지서에 소집되었다가 판교리 월치재 노은고지에 주둔하던 순천경찰서 경찰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순천지역에서도 국민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소집이 본격화되어 학살이 시작되었다. 학살은 경찰서 뿐 아니라 산하의 각 지서에서도 체계적으로 저질러졌다. 당시 경찰서에 감금되었던 주민들이 7월 21일 서면 학구리 ‘송치재’와, 7월 22일 서면 압곡리 ‘구랑실재’에서 총살당했다. 서면지서는 7월 23일 서면 대구리 ‘대구실재’에서, 창촌출장소는 7월 21일 주암면 행정리 행정저수지 인근 야산에서, 쌍암지서는 7월 23일 쌍암면 소재 월내골짜기에서, 용림출장소는 7월 24일 비촌리 복호마을 인근 골짜기에서 주민들을 총살했다. 순천경찰서 창천출장소 근무자 박씨(박춘규)는 창천출장소 유치장에 예비검속되었던 주민들 중 5명이 주암면 행정리 행정저수지 인근 야산에서 총살당한 사실에 대해 증언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순천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 수를 최소 150여 명으로 판단하였다. 같은 시기에 순천경찰서 유치장에서 순천지방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던 미결수들이 구랑실재에서 후퇴하던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당시 희생자들은 주로 순천, 여수, 고흥 출신의 여순사건 관련자로서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된 희생자 8명 외에 재판을 기다리던 사람의 수나 순천 국민보도연맹사건과의 관계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미군폭격 피해>

 

인민군 점령시기에 순천지역도 미군의 폭격을 받았다. 1950년 8월 6일 오전 11시 미 전투기 4~6대가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신성포 앞바다 어선들을 공격했다. 8월 11일에는 순천시 서면 선평리에 나타난 미 전투기 4대가 주민들을 향해 네이팜탄과 기총사격을 가했으며, 9월 24일에는 전투기 4대가 해룡면 율촌역과 호두리 염전을 폭격했다.

 

<인민군 측에 의한 피해>

 

주민피해는 인민군이 후퇴하던 시기에도 발생했다. 순천내무서에 감금되었던 주민 30여 명이 1950년 9월 27일 유치장에서 총살당했다.

 

<토벌경찰 피해>

 

순천경찰서 근무자 이씨(이희옥)의 증언에 따르면, 수복 직후 순천경찰서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서장과 함께 부역자를 선별하여 즉결처형하거나 유치장에 가두는 등 분류작업을 하였다. 하지만 부역자에 대한 처리는 대부분 토벌작전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순천에서는 1951년 3월 3일 서면 축내마을 반장 장작호는 주민 3~4명과 같이 마을회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비토벌을 위해 쌍암 고지에서 출동한 경찰토벌대는 노구치재를 오르면서 산꼭대기 마을인 축내마을 입구에서 마을회관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축내 회관 앞에 서있던 장작호가 사살되었다.

호남지역에서 국군 11사단의 토벌작전이 계속되던 시기인 1951년 3월 22일 서면 송광사에서는 오전 10시경 절의 재물을 누군가 약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주지 금당(속명 최재순)과 도산(속명 이희동)이 이를 살펴보기 위해 송광사에 올라갔다. 이들은 오전 10시경 사찰 내부에 있던 벌교경찰서 소속의 ‘보아라 부대’(빨치산에서 전향한 자들로 구성된 토벌부대)를 목격하였다. 이들에게 도산 승려가 붙잡혀 송광사 도성당 앞에서 총살당했다. 경찰서 근무자 이씨(이기무)에 따르면, 당시 송광사는 벌교경찰서 낙수지서 관할구역이었다고 한다. 순천경찰서 월동지서 근무자들에 따르면, 신원마을에 출동한 경찰들이 마을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이금순 등 3명의 주민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전쟁 전

1948. 10. 27.

낙안면

수십

국군

전쟁 전

1949. 10. 22.

질등재

9

마산 15연대

전쟁 전

1950. 1. 8.

판교리 노은고지

11

경찰토벌대

보도연맹원

보도연맹

1950. 7. 21.~24.

송치재 등

150

순천경찰서

폭격

1950. 8.~9.

신성포 앞바다 등

미군

인공

1950. 9. 27.

내무서 유치장

30

순천내무서

토벌

1951. 3.

송광사 등

5

보아라부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