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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보성지역사건 종합

2013.07.24 22:38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1469

<국민보도연맹사건>

 

전쟁이 발발하자 보성경찰서는 초기에 주민들을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했으나 연행자가 많아지자 경찰서 부근에 있던 양곡창고에도 감금했다. 학살은 7월 14일부터 23일까지 기러기재, 덕고개, 버드재 등에서 저질러졌다. 당시 사찰계 근무자가 처형을 지시하는 전문을 직접 보았으며 총살집행은 사찰계 형사들이 했다고 한다.

보성읍 원봉리 청용골짜기에서는 7월 14일부터 7월 20일까지 학살이 있었으며, 문덕면 봉갑리 원동지 야산에서는 7월 18일, 보성읍 대야리 버드재에서는 7월 20일, 미력면 미력재에서는 7월 21일과 7월 23일, 보성읍 옥평리 냇가주막 옆산에서는 7월 22일, 보성읍 용문리 야산과 미력면 도개리 복구개재에서는 7월 23일 학살이 있었다.

이외에도 각 지서로 연행된 주민들이 보성경찰서에서 모두 수용하기 어려워지자 보성지역 곳곳에서 희생되었다. 겸백지서와 예당출장소로 연행된 주민들은 7월 21일경 그럭재에서, 득량지서에 구금되었던 보도연맹원들은 7월 21일 득량면 오봉리 덕고개에서, 웅치지서에 구금되었던 보도연맹원은 7월 20일 웅치지서 인근 솔밭과 7월 21일 보성읍 옥암리 남산부락 뒷산에서, 율어지서에 구금되었던 보도연맹원들은 7월 21일 율어면 참새미고개에서, 천포출장소에 구금되었던 보도연맹원들은 7월 21일과 7월 23일 천포출장소 창고에서, 회천지서에 구금되었던 보도연맹원들은 회천면 봇재골짜기에서 보성경찰서 소속 경찰에 의해 총살되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보성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인한 전체 희생자의 수가 5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편, 벌교경찰서 낙수지서 근무자 이씨(이기무)에 따르면, 경찰서로 연행된 주민들은 순천 송광면 “돌더미”에서도 총살당했다고 한다.

 

<미군폭격 피해>

 

인민군 점령기인 1950년 9월 3일 오후 5시 회천면 객산리로 날아 온 전투기 1대의 폭격으로 회천면 객산리 논에서 일을 하던 주민 1명이 사망했다. 당시 전투기는 2개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보도연맹

1950. 1. 14.~23.

그럭재 등

500

보성경찰서

폭격

1950. 9. 3.

회천면 객사리

1

미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