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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담양지역사건 종합

2013.07.24 22:31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1521

<전쟁 전 토벌 피해>

 

담양에서는 전쟁 전 토벌국군에 의한 집단학살사건이 있었다. 1949년 10월 6일 20여 명의 고서면 주민들이 대덕면 문학리 옥천마을 앞산 중례골에서 집단희생되었으며, 10월 24일에는 10여 명의 대전면 주민들이 수북면 주평리 용구마을 뒷산에서 집단희생되었다.

 

<국민보도연맹사건>

 

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보도연맹에 가입된 주민들이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경찰관 측 증언이 있으나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된 사건이 없어 조사되지 않았다.

 

<11사단 사건>

 

국군 수복 시기 담양지역에서 인민군이 후퇴한 후 11사단에 의한 토벌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지역주민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부역혐의를 받았던 주민들의 피해는 11사단의 진주와 함께 시작되었다. 10월 15일 담양에 주둔한 20연대 1대대는 담양경찰서를 지휘하여 부역혐의를 받던 주민들을 연행했으며 부역사실을 실토받기 위해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 연행된 주민들은 11월 7일 20연대에 의해 집단희생되었다. 당시 연대장 박기병 대령은 담양읍내 주민들을 추성경기장에 모아놓고 수복을 기념하는 연설을 하는 동안 경기장 너머 관방천 건너편 산기슭에서는 담양경찰서에 감금되었던 주민 50여 명을 끌고 나와 총살했다. 당시 사건은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갈 목적으로 공개처형한 것이었으므로 경기장에 모인 주민들이 학살장면을 모두 볼 수 있었다. 희생자들은 모두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상태였다.

 

10월 30일 오전 7시경에는 담양군 무정면 덕곡리에 20연대 1대대가 마을을 포위한 후 총을 쏘며 진입하였다. 군인들은 집집마다 수색을 한 후 집에 남아 있던 청장년 30여 명을 마을 앞으로 끌고 나왔으며 이들 중 추부엽 등 9명을 묶어서 마을 옆 언덕으로 데리고 가 총살했다.

다음날인 10월 31일 새벽, 20연대가 용면 산성리에 진입하였다. 당시 마을에는 군경의 토벌을 피해 도망 다니던 100여 명의 피난민들이 머물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사살당했다. 20연대는 이날 작전으로 97명을 사살했다고 전과보고 하였으나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들은 토벌국군에 저항하는 등의 교전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작전을 마친 군인들은 이어 마을을 수색하여 청년들을 마을 앞 논에 집결시킨 후 이중 3명을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11사단의 토벌작전은 용면으로 이어졌다. 11월 6일 담양읍 방향에서 올라오는 국군을 보고 도망하던 용연리 용평마을 주민 3명이 이들에게 사살당했다. 병사들은 당시 도망하던 주민은 무조건 빨치산 혐의를 두고 사살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용평마을에 대한 본격적인 작전은 11월 11일 있었고, 이때 같은 마을 주민 12명이 희생당했다.

화순군 북면에서 작전을 하던 국군 20연대 3대대 12중대는 11월 10일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 산정마을에 진입하였다. 이들은 주민들을 집결시키고 빈 가옥에 불을 질렀다. 이어 모인 주민들 앞에서 인민위원장의 가족과 친인척, 여성동맹위원장 등 5명을 총살했으며, 마을청년 16명을 끌어내어 또 총살했다. 학살 후 12중대는 산정마을 아래에 있는 저심마을로 이동하여 다시 인민위원장 등 2명을 총살하고 갈전리 하갈마을로 내려갔다. 산정마을 학살이 진행될 당시 하갈마을 건너편인 화순군 북면 맹리 월곡마을에서도 국군 1개 분대 규모에 의한 학살이 있었다. 당시 월곡마을에서 학살을 저지른 군인들은 인민군 복장을 하였고 총대에 인공기를 매달고 있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라고 하면서 구타했고 이를 이기지 못하고 만세를 부른 주민들이 살해당했다. 당시 정보순, 정충래 외에 몇 명이 더 희생당했는지 확인되지 않으나 마을 규모로 보아 희생자 수가 10여 명은 넘을 것으로 판단된다. 학살을 마친 인민군 복장의 군인들은 다시 하갈마을로 내려갔으며 저심마을에서 내려온 군인들과 합류했다. 이들은 다른 마을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을 한 곳으로 소집하여 청장년 40여 명을 월곡마을 뒷산 골짜기로 끌고 갔다. 군인들은 골짜기에 모여 있던 주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았다. 이 사건으로 모두 32명이 학살당했다.

1950년 12월을 넘어서도 11사단의 소개작전은 계속되었다. 토벌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주민들은 마치 일상처럼, 군인들이 진주할 때는 산으로 숨었다가 저녁이면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군인들의 마을 진입 사실을 알고 피신할 수 있는 주민들은 주로 청장년 남성들이었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에는 노인과 어린이, 여성들만 남게 되었다. 따라서 11사단 작전 하반기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노약자들이었으며 상당수가 집에서 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살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11사단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1951년 2월과 3월에도 확인된다. 화순에 주둔하던 3대대 12중대와 교체된 10중대는 1951년 2월 11일 담양군 남면 무동리와 인암리에서 이동 중이었거나 산속에서 만난 주민 10여 명을 사살했다.

1951년 3월 18일에는 오전 10시 국군 20연대 1대대가 담양군 창평면(당시 남면) 외동리에 진입하였다. 당시 군인들과 함께 다른 마을 주민들이 따라왔다. 이들은 군인들이 공포를 쏘면서 주민들을 끌어내는 사이 마을의 살림과 식량을 약탈했다. 이어 군인들이 집에 불을 질렀으며 이때 몸이 불편하여 방에서 늦게 나오던 주민들이 사살되었다. 그리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주민들은 그대로 불에 타 숨졌다. 이날 모두 13명이 학살당했다.

 

<경찰토벌 피해>

 

11사단의 지휘를 받던 담양경찰서도 독립적으로 토벌작전을 벌였으므로 이들에 의한 피해도 잇따랐다. 담양에서는 대덕면 금산리 송환근 등 주민 6명이 1950년 10월 15일 창평시장으로 길을 나섰다가 문재고개에서 경찰토벌대에게 총살당했다.

한편, 담양읍 양각리 지노득의 모 김대판 등 일가족 4명은 ‘입산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1951년 3월 담양읍 백동마을 뒷산에서 전남경찰국 기동대에게 집단희생되었다.

월산지서 경찰과 경찰국 직속의 황호부대원들은 월평마을이 빨치산 준동지역이라는 이유로 1950년 11월 2일 월평마을 주민 전원을 강제로 마을입구 대나무밭 앞으로 집결시키고 부역자 색출을 하였다. 이상철은 ‘입산자가족‘, 이상택, 이금암은 ’부역혐의자‘라는 이유로 검거되었다. 이들은 월산지서로 연행되어 가는 길에 지서 인근의 뱀내 부근에서 총살당했다.

복귀한 경찰에 의한 부역혐의 주민 피해는 11월에 접어들어 담양경찰서와 산하 각 지서에 의해 저질러졌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확인된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1950년 11월 30일 담양경찰서로 연행되었던 월산면 월산리 이순우 3형제 등 70여 명의 주민들이 순창군 금과면 방축리 야산에서 총살당했다. 봉산지서는 1950년 11월 1일 봉산면 진용연을 연행하여 지서 대들보에 매달고 사경에 처할 때까지 폭행을 했다. 그래도 자백을 하지 않자 지서에서 4킬로미터 떨어진 송산리 세고개 골짜기로 끌고 가 총살했다. 수북지서는 1950년 11월 20일 두정리 최영초 등 수북지서에 감금했던 10여 명의 주민들을 한시동 골짜기에서 총살했다. 용면지서는 용면 두정리 노동주 등 연행했던 주민들을 1950년 12월 30일 트럭에 싣고 나가 금성면 학동 지푸실골짜기에서 총살했다. 창평지서는 1950년 11월 15일 창평면 임삼술, 임사술 형제를 연행한 후 삼천리 서낭당 고개에서 총살했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전쟁 전

1949. 10. 6.

중례골

20

전쟁 전

1949. 10. 24.

주평리 뒷산

10

토벌

1950. 10. 15.

문재고개

6

경찰토벌대

토벌

1950. 10. 30.

덕곡리 언덕

9

11사단

토벌

1950. 10. 31.

용면 산성리

100

11사단

피난민

토벌

1950. 11. 2.

뱀내

3

토벌경찰대

토벌

1950. 11. 6.~11.

용연리 용평마을

15

11사단

토벌

1950. 11. 7.

추성경기장 관방천

50

11사단

부역

1950. 11. 10.

운산리 산정마을

23

11사단

화순 북면 국군

부역

1950. 11. 15.

삼천리 서낭당고개

2

창평지서

부역

1950. 11. 20.

한시동 골짜기

10

수북지서

부역

1950. 11. 30.

방축리 야산

70

담양경찰서

부역

1950. 12. 30.

지푸실 골짜기

용면지서

토벌

1951. 2. 11.

무동리, 인암리

10

11사단

토벌

1951. 3. 18.

외동리

13

11사단

토벌

1951. 3.

담양읍 양각리

4

경찰토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