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삼척지역사건 종합

2013.06.24 11:46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1271

<전쟁 전 정치적 학살>

 

삼척에서는 1950년 3월 군인들이 마을에 진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청년들에게 알려주었던 상장면 혈리 소금장수 박우두만이 태백산지구전투사령부 군인들에 의해 천평국민학교에서 공개 총살당했다. 당시 같은 마을 박근덕이 북삼국민학교에서 총살당했으며, 마을 반장 권병오도 국군에게 끌려가 어디선가 희생되었다.

 

<부역혐의 피해>

 

인민군이 물러가고 9월 29일 국군 3사단 22연대가 진주하자 1950년 9월 말 원덕리 풍곡리 덕풍마을 주민들이 군인들에게 소집당했는데, 이 중 김덕삼 등 7명이 입산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총살당했다. 연로하여 집에 있던 엄계상은 군인들의 방화로 사망했으며, 김순례는 도망하다 물에 빠져 사망했다. 같은 시기 풍곡리 큰 마을에서도 박종손 등 4명이 희생당했다. 1950년 9월 28일에는 장호리에 30여 명의 3사단 헌병대원들이 들어와 인민군 점령기에 장호리 인민위원장이었던 김상범을 장호리 골목길에서 총살했다.

 

노곡면에서는 11월 22일 노곡지서에 감금되어 있던 금계리 임연식 등 20여 명의 주민들이 근덕면 교곡리 드릅재에서 집단희생당했다.

 

<1‧4후퇴시기 예비학살>

 

주민들의 피해는 1‧4후퇴시기를 전후해서도 나타났다. 1950년 12월 말에는 정라지서 유치시설에 감금되어 있던 원덕면 장호리 김동형, 삼척읍 남양리 김옥이 등 주민들이 정라진항(삼척항) 앞바다에서 희생당했다. 당시 30~40명이 타는 어선이 여러 차례 나갔다고 하므로 희생자 수는 1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재수복 후 부역혐의 피해>

 

재수복 시기인 1951년 2월 13일에는 원덕면 용화리 김진만 등 8명이 근덕지서에 잡혀 있다가 맹방백사장과 팔송정 뒷산에서 희생당했다. 당시 백사장 솔밭 10여 미터의 구덩이에 시신이 꽉 차 있었다고 한다.

 

이상 삼척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학살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전쟁 전

1950. 3.

천평국민학교

태백산지구

부역

1950. 9.

풍곡리 등

102

3사단 헌병대

강원도경찰국

1‧4후퇴

1950. 12.

삼척항 앞바다

100

1‧4후퇴

1951. 2.

근덕면 맹방백사장 등

수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