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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춘천지역사건 종합

2013.07.16 09:55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1281

전쟁 발발 당시 국군 6사단은 6월 25일부터 7월 4일까지 춘천과 홍천지역을 방어했다. 6월 25일 당시 6사단은 육군본부로부터 군량미의 부족을 이유로 외출, 외박을 적극 실시하라는 지시에 따라 1/3 이상의 병력이 빠져 있었다. 6월 29일 사단장은 2연대와 19연대에게 홍천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춘천지역의 집단희생사건은 춘천형무소 재소자와 부역혐의사건, 미군폭격사건이다.

 

<형무소사건>

 

6사단은 후퇴하면서 춘천형무소의 재소자를 방치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나 아직까지 이에 대하여 어떤 결론이 내려진 바는 없다. 춘천형무소에는 전쟁발발 당시 1,250여 명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춘천형무소에서 희생되었다며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된 사건은 4건이었다. 조사결과 이 사건들은 모두 진실규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부역혐의 피해>

 

국군 수복 후 희생사건은 신북면에서 확인된다. 신북면에서는 국군 수복 직후인 1950년 9월 말 정미소에서 일하던 율문리 백문길과 그의 모친 김정자가 치안대에게 율문리 강변 모래사장에서 총살당했다. 당시 함께 희생된 주민들이 더 있었는데 이중 이름이 확인된 주민들은 박재득, 정학순, 오재봉이다.

 

<미군폭격 피해>

 

춘천에서는 미공군의 폭격에 의한 피해가 컸던 것으로 확인된다. 1950년 9월 23일 오전 춘천 효자동에 전투기들의 폭격이 있었고, 오후에는 B-29폭격기 수십 대가 융단폭격을 가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3~4일 후 국군이 들어와 시신들을 폭탄 구덩이에 모두 매장했다.

 

이상 춘천지역에서 확인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을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부역

1950. 9.말

신북면 율문리 강변

74

국군

강원도경찰국

폭격

1950. 9. 23.

효자동

미군

B-29융단폭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