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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연기지역사건 종합

2013.07.23 22:34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1424

<국민보도연맹사건>

 

연기에서는 전쟁 발발 다음 날인 6월 26일 조치원경찰서로부터 ‘보도연맹원들을 지서에 모아 놓아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소집명령은 각 지서로 전달되었고 통지를 받은 주민들이 각 지서에 감금되었다가 조치원경찰서로 이송되었다. 이들은 결국 7월 8일 수멍재 ‘은고개’와 ‘비성골’에서 학살당헀다.

당시 경찰은 비성골 산등성 부근에 호를 60여 미터 길이로 팠으며, 여기서 600여 미터 떨어진 ‘은고개’에도 학살이 준비되고 있었다. 사건 후 비성골 참호에서 꿇어앉힌 채 사살당한 시신 100여 구가 발견되었다. 당시 후퇴하던 수도사단 17연대(연대본부는 공주에 있었다) 군인들도 피난민 중 보도연맹원들을 색출하여 수멍재 등에서 총살했다고 증언하였다. 조치원의 희생자는 모두 158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미지상군에 의한 피해>

 

연기지역에는 국민보도연맹사건이 발생한 직후 미군의 소개작전에 의한 피해도 발생했다. 1950년 7월 10일 오후 5시 충남 연기군 서면 월하리에는 3~4명의 미군이 나타나 피난하지 않고 남아 있던 8명의 주민을 끌어내 트럭에 싣고 1km떨어진 월하교로 끌고 갔다. 미군은 주민들을 하천 둑으로 내려가게 한 후 다리 위에서 총을 쐈으며 이로 인해 4명이 사망하고 4명은 부상당했다.

 

<부역혐의 피해>

 

국군 수복 후인 1950년 9월 28일에는 철모를 쓴 군인들이 조치원읍 서창리 마을에 들어와 부역혐의자를 색출하였다. 민청위원장 강희규, 자위대장 장태식 등 4명의 주민들이 군인들에게 붙잡혀 조치원여자중학교 뒤 강변 둑에서 집단희생당했다.

 

이상 연기지역에서 확인된 민간인 집단학살 피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보도연맹

1950. 7. 8.

수멍재 은고개 등

200

경찰 수도사단

소개

1950. 7. 10.

서면 월하교

8

미군

4명 부상

부역

1950. 9. 28.

조치원 강변 둑

4

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