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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보령지역사건 종합

2013.07.23 21:53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1411

<국민보도연맹사건>

 

보령지역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고 각 지서로 소집된 국민보도연맹원 등 주민들이 대천경찰서(현 보령경찰서) 임시유치시설로 쓰이던 대천동 양곡창고에 감금되었다가 7월 10일 남포면 옥서리 이어니재 등에서 희생되었다. 한편 주산면과 같이 보령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은 해당 지서에서 감금되었다가 인근에서 희생되었다. 한편 인민군은 주둔하지 않았다.

 

<부역혐의 피해>

 

국군 수복 후 대천경찰서는 부역혐의를 받은 주민들을 연행하여 양곡창고 2개에 감금했다. 당시 감금되었던 주민은 700~800명에 달했는데, 창고에 설사병(이질)이 번져 이로 인해 하루에 2~3명이 사망했다. 이 때문에 취조 전에 사망한 주민들도 많았다. 경찰은 남은 주민들을 성주산 골짜기, 남포면 이어니재, 대천항에서 총살했다.

 

대천경찰서로 이송되기 전 각 지서에서도 희생당한 주민들이 있었다.

웅천면의 주민들은 웅천에서 대천으로 가는 도중 새안이재에서 집단희생되었다. 주산면에서는 치안대원 15명 정도가 주산지서의 일을 도왔는데, 이들에 의해 주민들이 지서로 연행되어 희생당했다. 당시 야룡리 임동현과 함께 임창재, 임영재가 주산지서로 연행되었는데 임창재는 주산지서에서 총살되었고 임영재는 대천경찰서로 이송되었다. 천북면에서는 낙동리 김동봉, 지봉남 등이 대천역 부근 통운창고에 감금되었다가 천북면 학성리 밤섬에 수장되었거나 이어니재에서 살해당했다. 신죽리에서도 이봉구, 이학구 등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1‧4후퇴 시기 피해>

 

주민들의 피해는 1‧4후퇴 직전에도 있었다. 보령군 청라면 나원리에서는 1·4후퇴 직전 강신덕이 청라지서 경찰에게 향천리 새안골에서 살해되었으며, 이종익은 인민군 복장으로 후퇴하던 경찰에게 향천리 효자정 부근에서 총살되었다. 황룡리에서는 민청위원장이라는 이유로 임무성과 그의 가족이 끌려간 뒤 행방불명되었다.

 

이상 보령지역에서 확인된 피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보도연맹

1950. 7. 10.

남포면 이어니재

대천경찰서

부역

1950. 10.

성주산 골짜기 등

700~800

대천경찰서

부역

1950. 10.

새안이재 등

각 지서

1‧4후퇴

1951. 1.

향천리 새안골

대천경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