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김영사, 대구 사범학교 관련)


111~112쪽)

박정희의 3년 선배요 뒤에 박정희 덕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이병주는 평소에 ... 그의 증언을 들어본다.


1930년대 대구사범학교는 관립학교로 학생들이 대부분 기숙사생활을 했다. 기숙사에는 주로 일본인 사감이 배치되어 학생들을 통제했다. 교과목도 한문을 가르쳤으나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에는 민족교육이 존재할 수 없었다. 다만 일부 조선인 교사들이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모아 민족교육과 사회주의 서적을 읽는 모임을 만드는 정도였다. 1930년대 초기 대구사범학교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다.


현준혁 선생을 중심으로 독서회를 조직하여 좌익서적을 읽는 동급생들이 하나 둘 퇴학처분을 받게 되었다. 제일 먼저 부장환 군이 퇴학당했다. 그 다음은 신태환 군이 당했다. 3학년 2학기에 현준혁 선생이 경찰에 구금당하고 서정철, 신현필, 이태룡, 최성민 등이 구속되었다. 그리고 이완종, 옥치상, 이종화, 박준호 등 30여 명이 4학년 진학 전에 퇴학을 당했다.   이병주 <죽암일기>


현준혁은 경성제국대학을 나와 대구사범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는 독서회를 꾸려 이념서적을 탐독시키고 있었다. 이 시기 40여 명의 학생이 퇴학을 당했으니 큰 사건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박정희의 이름이 보이지 않고 그 뒤에도 이런 사건에 끼지 않았다. 1932년 입학동기생 100명 중 30명이 졸업을 하지 못했는데 박정희는 졸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