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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1만 4,343명 명단 수록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벌어진 한국전쟁. 3년 동안 무려 6백만 명의 사람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민족 최대의 비극이자 세계적 참상이었던 이 전쟁에서 남과 북, 미국과 중국 등 군인들의 격전만 알려져 있을 뿐 반복된 점령과 수복 속에서 이승만 정부에 의해 죽어 간 1백만 민간인들의 한 맺힌 죽음은 주목받지 못했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려야 할 평등하고 양도 불가능한 천부적 권리를 인권이라고 했다. 다양하게 분류되는 인권의 종류 중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권리는 생명권이었다. 그런데 1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생명권이 빼앗긴 이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중대한 관심 사안에서 벗어나 있다.

이들 민간 희생자들이 누구였으며 무슨 이유로, 어떻게 죽어 갔을까? 죽음이라는 객관적 사실조차 숨겨 온 국가, 사회, 이웃, 공동체가 지금도 이 억울한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 더 나아가 죽은 자의 인권을 다시 유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금기의 근원적인 영역에 다시 도전한다.




도서소개



제목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부제

저자 신기철

출간 2016년 9월 1일

판형 46판(128×188)

쪽수 288쪽

가격 12,000원

발행 인권평화연구소

ISBN 979-11-956330-5-0  03340



저자소개


신기철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 다녔으며 인천과 구로, 영등포 지역 노동운동과 고양  지역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에서 일했다.  지금은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에서 인권평화 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새로 나타난 사건은 물론 이미 진실규명된 사례들을 인권의 관점에서 심층 재구성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진실 역시 놓칠 수 없는 관심사이다.

저서로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 《멈춘시간1950》, 《전쟁범죄》, 《국민은 적이 아니다》,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 등이 있다.



차례


추천글 안병욱(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머리글 


여는 글 버림받은 인권과 ‘잃어버린 8년’

해방 후 ‘잃어버린 8년’ 되찾기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주장

한국전쟁 전후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이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진실 규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제1장 전쟁 전 이미 민간인 학살이 있었습니다

경주 내남면 명계리와 문경 산북면 석봉리

미 군정, 유엔 그리고 남북 분단

전쟁 전 정치적 충돌과 대규모 연행

전쟁 전 토벌 작전 학살


제2장 전쟁은 민간인 학살을 확대했습니다

전사들의 전쟁과 민간인들의 죽음

형무소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소개 작전 등 피해

수복 직전 인민군 측에 의한 피해와 알고 싶지 않은 진실


제3장 55만 부역자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적대세력 사건을 피하니 부역혐의 사건을 만나다

‘장’자 붙은 자 모두 총살

재판 없는 처형 범죄, 부역혐의 사건

이승만 정부의 부역자 처리는 전쟁 범죄

2차 후퇴와 학살의 반복

소개(疏開)인가 학살인가, 국민방위군 사건


제4장 토벌이 아니라 학살이었습니다

불갑산 학살의 진실

국군 11사단, 8사단의 피란민 공격

경찰 토벌 부대의 작전식 학살

공비 토벌인가 민간인 학살인가


제5장 미군 폭격 학살은 전쟁 범죄입니다

한순간에 사라지다

1950년 7~9월

1951년 1~2월

민간인 피해만 부르는 폭격 전략과 전술


제6장 법에 의한 처형은 합법이었을까요

최능진의 국방경비법 위반 사례

1심 재판에 의한 부역자 처리

인권을 유린한 재판 과정

헌법조차 위반한 부역자 재판


맺는 글 왜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을까요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 다시 보기

전쟁 후 국가 범죄의 연속성, 연좌제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은 계속됩니다

지워지는 기억과 다하지 못한 책임


부록 ·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희생자 1만 4,343명 명단

참고문헌 등



주요 내용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벌어진 한국전쟁. 3년 동안 무려 6백만 명의 사람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민족 최대의 비극이자 세계적 참상이었던 이 전쟁에서 남과 북, 미국과 중국 등 군인들의 격전만 알려져 있을 뿐 반복된 점령과 수복 속에서 이승만 정부에 의해 죽어 간 1백만 민간인들의 한 맺힌 죽음은 주목받지 못했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누려야 할 평등하고 양도 불가능한 천부적 권리를 인권이라고 하며, 다양하게 분류되는 인권의 종류 중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권리는 생명권이라고 한다. 그런데 1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생명권이 빼앗긴 이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중대한 관심 사안에서 벗어나 있다. 저자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 명예회복의 과정이 얼마나 그리고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평가함과 동시에 인권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할 필요성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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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1백만 민간인의 집단 희생 실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특히 지난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희생자 수를 중심으로 종합 정리했는데, 인민군 측에 의한 사건 희생자와 부상자는 제외했다. 저자에 따르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한 전체 한국전쟁 전후 희생된 민간인은 1만 8,518명이었다. 신청된 희생자 수는 1만 401명, 신청되지는 않았으나 같은 사건에 함께 희생된 것으로 보여 조사된 희생자 수는 8,117명이었다. 조사 결과 1만 4,343명에 대해 진실규명, 2,598명에 대해 추정, 918명에 대해 불능, 659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4,175명 대부분은 조사 기간 연장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급하게 종결지으면서 생긴 결과였다.


미국과 이승만 세력은 1945년 8월부터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 김구 선생 등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암살과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 노동절 기념 대회 등에서는 경찰 주도의 집단 테러가 벌어졌고, 문경 석달동의 사례처럼 군대에 의한 토벌 작전식 집단학살도 저질러졌다. 신청 1,560명을 포함하여 모두 2,196명을 조사했고, 조사 결과 1,849명이 진실규명 결정되었다. 제주 4·3 사건 전후의 피해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므로 이 자료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전쟁 발발 후인 1950년 6월부터 8월 사이 정치범들에 대한 예비 학살인 형무소사건은 한 번에 최소 300명에서 최대 7,000명을 살해하는 대량 학살이었다. 신청 1,137명을 포함하여 모두 1,604명을 조사했으며, 1,209명이 진실규명 결정되었다. 서울, 인천, 경기, 강원, 전북, 전남의 경우 전체 신청 사건에 비해 불능이나 추정의 조사 결과가 많은데 대부분 수형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기에 30만 명까지 희생되었다고 알려진 국민보도연맹사건이 벌어졌다. 이들 두 사건은 후퇴 직전 국군과 경찰에 의해 저질러졌으므로 이들의 후퇴 시기, 후퇴 경로와 정확히 일치한다. 신청 3,250명을 포함하여 모두 5,394명을 조사하여 4,859명을 진실규명 결정했다. 경남과 경북 지역의 피해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데 이는 대체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면서 점점 피해가 커지는 경향과 일치한다.


인민군 후퇴 시기 적대세력 사건은 후퇴하는 인민군 측의 조직적 학살로 1950년 9월 28일 전후에 발생했다. 같은 시기 발생했던 수복 국군에 의한 부역혐의 사건과 뒤섞여 발생했고, 가해 측과 피해 측이 서로 뒤섞여 있었으므로 진실이 명확히 드러났다고 보기 힘들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의 피해자 통계에서 이 사건을 제외했다. 영남 지역 피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피해가 컸던 호남과 충청 지역은 수복 후에도 피해가 나타났다. 수도권 지역의 사건은 납북 과정에서 벌어져 다른 지역과 성격을 달리하는 경향이 있다.


9·28 수복 후 점령지에서 해방된 주민들은 점령 지역에 남아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낙인이 찍혀 집단 학살당했다. 대부분 경찰의 지휘 아래 연행된 주민들이 A, B, C 등급으로 구분되어 재판 없이 즉결 처분당했다. 희생자들은 주로 청장년이었고 학살 후에는 재산 수탈이 잇따랐다. 남겨진 가족들은 마을에서 추방당하기도 했다. 신청 1,103명을 포함하여 모두 4,748명을 조사했고 이 중 3,023명을 진실규명 결정했다. 인민군의 점령을 전제로 해야 하는 사건의 특성에 따라 경남북 지역 대부분은 비교적 비중이 작게 나타났다. 서울과 충북, 전북은 신청이 없거나 적은 편이며 대체로 미신청 희생자 수가 컸다. 희생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호남을 비롯한 산간 지방 주민들은 1950년 11월부터 11사단 등 무장 군부대의 지휘 아래 토벌을 빌미로 피해를 당했다. 남녀노소 구별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작전의 목적이 마을 자체의 파괴에 있어 보였다. 대개의 희생자가 노약자들이었는데 그 이유는 피신하지 못하고 마을에 남겨졌기 때문이었다. 신청 2,164명을 포함해 모두 2,960명을 조사하여 이 중 2,414명을 진실규명 결정했다. 수복 후 후방 토벌 부대였던 11사단과 8사단의 피해뿐 아니라 강원과 충북의 산간 지역에서도 비슷한 피해가 발생했다. 강원 지역은 물론 전북과 전남 지역 역시 진실규명 결정된 희생자 수에 비해 추정 또는 불능 결정된 희생자 수가 상당수에 이르는데, 이는 대부분 토벌 국군이 산간 지역 피란민을 공격한 경우였다. 이 경우 희생자의 시신을 찾기 힘들었을뿐 아니라 목격자의 증언 확보도 어려웠다. 이렇게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피해 사례는 거창 사건처럼 한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는 작전에서 발생한 피해와 달리 전남 장흥 유치 계곡이나 전북 임실, 고창 등 오랜 기간을 두고 토벌 작전이 전개된 지역에서 대부분 발생했다.


민간인들이 입은 폭격 피해 역시 전쟁이 벌어졌던 초기 8개월에 집중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전선이 오르내리던 1950년 8월 전후와 1951년 2월 전후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이 때는 격렬한 전투가 진행되던 시기가 아니라 전선의 이동이 멈춘 직후 시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모두 1,616명을 조사했으나 진실규명으로 판단한 희생자는 989명에 그쳤으며, 64명을 희생추정자로 보았다. 나머지 희생자 중 563명에 대해 진실규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34.8%에 해당하는데 전체 비율 8.5%에 비교하면 그 차이가 매우 크다. 대부분은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구성한 뉴라이트 성향의 위원회에서 “희생 사실은 인정하지만 미군 폭격의 불법성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미군 폭격 피해를 군사 작전에서 생기는 “부수적 피해”로 보았다.


저자는 국군 수복 후 부역 혐의 주민들에게 적용했던 법률인 《비상조치령》과 《국방경비법》도 헌법을 위반한 법률이어서 효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1952년 9월 9일 헌법위원회는 단심에 의한 사형 확정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던 것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법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에서 죽어 갔다. 그런데 이 법령들은 최상위 법인 헌법을 위반한 것이었다.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지 대한민국은 아직도 답변을 피하고 있다.



추천사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핏줄이 같은 동족을, 같은 마을의 이웃을, 심지어 가족을 상대로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수백만 무고한 생명이 같은 피붙이에게 맹목적으로 학살당한 것입니다. 

인류사에 그 유례가 없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는 아군과 적군의 구별도 불가능했고, 전투원과 민간인의 구분도 무시되었습니다. 피아간에 대치하는 전선도, 교전이 행해지는 시간도 따로 없었습니다. 

어디에서든 언제든 광기에 찬 군대와 경찰과 좌우익 주구들은 평범한 민간인들을 상대로 사냥하듯이 학살 만행을 자행했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이 줄곧 전 국토는 조그만 마을까지 빠짐없이 기묘한 명목으로 살육이 자행된 전쟁터였습니다. 

전국 대부분 마을에서 좌익과 우익은 갖가지 구실을 붙여 거듭해서 민간인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0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그때의 참혹한 실상을 체계 세워 말과 글로 정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유족들은 꾸준히 아픈 기억들을 증언하였고 이를 신기철 소장이 채록하여 정리하는 한편 관련 기록들을 찾아 대조해 매우 요령 있게 민간인 학살의 전모를 간추렸습니다. 누구라도 한눈에 참혹했던 전쟁의 참상을 파악할 수 있게 잘 정리했습니다. 

이 훌륭한 책을 통해 여전히 스멀거리는 전쟁의 광기를 발본하면서 피해자·희생자 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안병욱(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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