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의회에서 고양 금정굴 사건 희생자들을 가리켜 ‘김일성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등 모욕적 발언을 한 고양시의원에 대해 법원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24일 금정굴유족회의 설명을 들어보면, 서울고법 민사22부(재판장 한창훈)는 지난 12일 고준일씨 등 고양 금정굴 사건 희생자 유족 58명이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고인 김홍두(새누리당) 고양시의원이 낸 항소를 기각하고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5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재판부는 “고양 금정굴사건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던 지역주민들로서 그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혐의자의 가족, 또는 그 혐의와 무관한 지역주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는 마치 희생자들 전부 또는 대다수가 적극적인 친북 부역활동을 한 것처럼 발언함으로써 그 후손들인 원고들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여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 중 명예훼손 관련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기는 1,2심에 걸쳐 이번 건이 처음이다.
김 의원은 2014년 9~11월 고양시의회 환경경제위원회와 본회의 등에서 “전시에 김일성을 도와서 우리 자유 대한민국에 총부리를 갖다 대고 죽창을 들이댄 사람이 민간인입니까? 적군입니까? 김일성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자유 대한민국 체제를 뒤흔든 그 분들을 위한 추모제는 지내준다”는 등 잇단 모욕적 발언으로 유족들의 반발을 샀다.
이번 판결에 앞서 새누리당 등 고양시의원 18명과 보훈단체 대표들이 “김 의원의 발언은 공익적 의회활동 일환”이라며 탄원서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되레 “피고의 발언은 지역 주민들이 널리 알 수 있는 시의회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계속 이뤄진데다, 발언 내용과 표현 형태·수위 등을 종합해보면 금정굴 사건 희생자들이나 유족들의 명예를 침해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피고의 발언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거나, 적시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연구소장은 “전쟁상황에서 국가가 빨갱이라는 논리로 인권을 유린한 데 이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희생자를 몰았던 논리를 똑같이 반복한 것에 대해 재판부가 잘못했다고 명백하게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지난해 7월 ‘김 의원은 유족들에게 각 50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김 의원은 ‘유족회에 사과하고 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의 조정안을 거부해 정식 재판에 회부됐고, 이번 판결로 전체 2900만원을 배상하게 됐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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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고양 금정굴 사건 희생자 폄하한 시의원, 유족들에 배상해야"(법률신문)
1950년 10월 고양경찰서는 전쟁 초기 북한이 이 지역을 점령했을 때 인민군에게 부역한 혐의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주민들을 잡아가 조사한 뒤 20~40명씩 금정굴로 끌고가 총살한 뒤 암매장했다. 이 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은 150여명을 넘었다. 57년이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민들로 소극적 부역행위를 했던 사람도 일부 있지만 상당수는 이와 무관한 지역주민이었다"며 "고양 금정굴 사건은 경찰이 희생자들을 집단 처형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2014년 9월 김홍두 고양시의회 의원은 시 의회 위원회에서 "(고양 금정굴 사건 희생자들은) 아무 죄도 없이 죽은 것이 아니다. 무고한 양민을 무참히 죽인 것이 아니라 부역한 혐의가 있는 사람을 붙잡아다 재판 없이 죽인 사건으로 재조명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후에도 김 의원은 "금정굴 사망자는 무고한 양민이 아니다", "전시에 김일성을 도와 우리 자유 대한민국에 총부리를 갖다 대고 죽창을 들이댄 사람이 민간인입니까?"라고 발언했다. 이에 희생자 유족들은 "김 의원이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족 1명당 200만원씩 손해배상을 하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 민사22부(재판장 한창훈 부장판사)는 희생자 유족 58명이 김 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6나2048738)에서 최근 1심과 같이 "김 의원은 유족 58명에게 50만원씩 지급하라"고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 의원이 마치 희생자 전부 또는 대다수가 적극적인 친북 부역활동을 한 것처럼 발언함으로써 그 후손들인 유족들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경험칙상 명백함으로 김 의원은 유족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금전적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당시 북한 인민군에 희생된 민간인들이 다수 존재함에도 유족보상절차에서 고양 금정굴 사건 희생자들과 현저한 차이가 있어 그 처우개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6·25 당시 고양 지역 수복 또는 자유민주주의 회복 등을 위해 활동했던 태극단원 희생자들과 같은 전몰군경 유가족들에 대해 합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발언 취지도 보이지만, 그 부분보다 금정굴 사건 희생자들을 비난·폄하하는 부분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태극단원 희생자들에 대한 재평가 등을 주장하기 위해 금정굴 사건 희생자들을 비난·폄하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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