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금정굴학살 진상규명

정부에서 적극 나서야

 

제주 4‧3항쟁, 거창 양민학살 사건 등 동족상잔의 비극의 ‘유산’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경기도 고양시 일대의 양민 1천여명이 묻힌 금정굴의 역사가 밝혀져 그 아픔을 더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시 살해당한 사람들 중 대다수는 무고한 양민이라는 데 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부역한 혐의가 있다면 친척까지 처형을 당했으며, 가족 전체가 몰살당해 시신을 찾더라도 그 영혼을 모셔 줄 유족조차 없는 실정이다.

 

남아 있는 유족들마저 ‘빨갱이’로 몰려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 명절 때가 돼도 무덤마저 찾지 못하는 치욕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93년에 와서야 대형작업시설이나 전문가도 없이 사비를 털어 발굴을 시작해 현재 7백여구의 유골이 발굴됐다. 그런데 유족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정부 관련부처의 태도다. 유골발굴 관련자료가 없다고 해서 청원서마저 되돌아오는 실정인 것이다.

 

다시는 이런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도록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금정굴사건의 진상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고영봉/광주시 북구 운암동 미라보아파트(1995. 10. 11. 한겨레)

 

19951011_한겨레.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 신원감정‧장례‧진상규명 요구 거절, 굴입구 1주일째 방치(한겨레, 1995. 10. 14) file 관리자 2013.09.06 1453
18 '금정굴' 유골시위 file 관리자 2013.09.06 1404
» 금정굴학살 진상규명 정부에서 적극 나서야(한겨레, 1995. 10. 11) file 관리자 2013.09.06 1351
16 금정굴 발굴유골 1백50명 넘을 듯 file 관리자 2013.09.06 1498
15 두골 등 6백여점 또 발굴(한겨레, 1995. 10. 4) file 관리자 2013.09.06 1355
14 (사설)‘금정굴 학살 규명’ 정부가 나서라(한겨레, 1995. 10. 4)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9.03 1303
13 교양 <PD수첩>(MBC 오후 11:00)(경향, 1995. 10. 1)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9.03 1355
12 PD수첩 <금정굴의 넋>(한겨레, 1995. 10. 3)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9.03 1539
11 <금정굴 학살> 첫 확인(동아, 1995. 10. 1)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9.03 1373
10 고양 <금정굴 학살> 유골발굴(경향 1995. 10. 1)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9.03 1364
9 총알박힌 두골 등 3백70점 발굴(한겨레 1995. 10. 1)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8.10 1416
8 93년 ‘피학살양민유족회’구성 함겨운 결실 … 정부 나설 차례(한겨레 1995. 10. 1)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8.10 1394
7 지하12m서 두개골조각 등 38점(한겨레 1995. 9. 30)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8.10 1393
6 ‘금정굴 양민학살’ 발굴 저지-강행 공방(한겨레 1995. 9. 27)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8.10 1435
5 어제 유해발굴 시작 … 1천여명 매몰 추정(한겨레 1995. 9. 25)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8.10 1374
4 <금정굴사건>재조명, 진상규명 해야(동아 1993. 10. 21)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8.10 1333
3 지난 50년 부역자 낙인 5백명 희생…어제 합동위령제(한겨레 1993. 9. 26)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8.10 1387
2 유족, 연좌제 겁나 43년 동안 말 못하고 쉬쉬(중앙 1993. 9. 13)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8.09 1464
1 "9.28수복 때 대학살"(경향 1993. 9. 14) file 인권평화연구소장 2013.08.07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