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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고양 금정굴 양민학살

45년만에 진상 밝힌다

어제 유해발굴 시작 … 1천여명 매몰 추정

 

한국전쟁 중 이념대립의 와중에서 1천여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고양시의 ‘금정굴양민학살 사건’의 전모가 사건발생 45년 만에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고양시민과 유족들로 구성된 ‘금정굴사건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김양원, 43, 사업)는 24일 이 사건 희생자들의 유골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시 탄현동 고봉산 기슭 금정굴에서 사건 이후 처음으로 유골발굴작업에 들어갔다.

 

고양시민과 유족 등 1백여명은 이날 오전 금정굴 어귀에서 제3회 합동위령제를 연 뒤 유해발굴을 위한 간단한 의식과 함께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진상규명위 쪽은 “굴의 깊이가 50여m에 이르는데다 주변에 암반 등 장애물이 많아 사체발굴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원 위원장은 ‘정부 협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산속에 있는 수십m 깊이의 수직갱을 파 내려가 유골을 발굴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며 ”유족들이 한두 푼씩 모아 포크레인 등을 동원하고 있지만, 전문가가 한 사람도 없어 어려움이 크다“고 걱정했다.

‘금정굴사건’의 발단은 지난 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북한군이 내려오면서 일부 좌익세력이 우익단체 단원 50여명을 처형한 데서 비롯됐다. 그해 10월 초 북한군이 퇴각하자 다시 세를 얻은 우익단체들이 이번엔 좌익부역자들을 찾아 보복에 나섰다.

 

유족들에 따르면 당시 고양경찰서로 붙잡혀간 1천여명의 주민들은 차례로 금정굴이 있는 고봉산 기슭으로 끌려가 살해된 뒤 수직 폐광인 금정굴에 집단매몰 됐다. 가족 전체가 몰살당해 지금은 발굴작업에 참여할 사람조차 없는 피해자들도 많다고 유족들은 말했다.

 

이날 위령제에서 한 유족은 “희생자 대부분은 부역자들이 아닌데도 반세기 동안 우리는 빨갱이 가족이란 눈총이 두려워 성묘조차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며 울먹였다. 북한군 치하에서 적극적으로 부역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9‧28 서울수복 직후 대부분 월북하거나 도피했으며, 희생자 대다수는 기껏해야 살기 위해 소극적으로 인공기를 흔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유족회장 서병규(67)씨는 “이제 와서 누구에게 책임을 묻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진상을 정확히 규명해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한이라도 달래 드리자는 게 발굴 작업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강세준 기자 (1995. 9. 25.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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