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지역사건 종합
2013.07.09 15:27
<국민보도연맹사건>
원주는 강원도 각 군 중에서도 가장 후방에 있었으며, 국군 6사단의 3일간 춘천방어로 다른 사단 방어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후퇴에 여유가 있었다. 이 때문인지 6사단의 후퇴 경로를 따라 횡성에 이어 국민보도연맹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원주읍 개운리 권혁남 등 30여 명의 주민들이 6월 30일경 원주경찰서로 연행되었다가 원주 판부면 금대리 일명 ‘가리파 고개’에서 희생되었다.
<(군)형무소사건>
같은 시기에 후퇴하는 국군(6사단 헌병 추정)은 1950년 6월 30일 원주 군형무소의 재소자 180여 명을 6대의 트럭에 싣고 원주 뒷산으로 끌고 가 총살했다. 1950년 7월 25일자 『로동신문』에는 현장생존자 박승봉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이에 의하면 3~5명씩 포승줄로 묶어 트럭에 실렸으며 한 시간 반 가까이 돌아다닌 후 “충주에 다 왔으니 머리를 들라”고 했으나 도착한 곳은 원주읍 뒷고개였다. 현장에는 이미 헌병대가 총살을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주형무소는 1979년 설치되었으므로 이는 6사단 군 형무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부역혐의 피해>
인민군 점령기 원주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사되지 않았다.
원주지역은 1950년 9월 30일 국군 6사단에 의해 수복되었다. 당시 6사단 19연대는 10월 2일 문막에 교전한 후 양평으로 진입했는데, 같은 시기 문막에서는 국군에 의해 주민 20여명이 지서로 연행당했다. 당시 주민들은 심하게 고문을 당했으며 원주로 이송 당하던 중 군군에 의해 동화리 세고개(속칭 쇠고개) 숲속에서 학살당하였다.
<1‧4후퇴시기 피해>
1‧4후퇴를 앞둔 1950년 12월에는 문막리 최병남, 김보배 등이 문막지서로 끌려간 후 희생되었다. 원주경찰서는 이 시기에 주민들을 양안치재에서 학살했다. 1950년 12월 말 단계리 세포위원장이었던 손어봉, 그의 큰 아들 손상룡, 인민위원장 손수천이 희생당했다. 손어봉은 지정면 보통리에서 피신하다가 역전지서로 간 후 행방을 알 수 없으며 손상룡, 손수천은 원주경찰서로 잡혀간 뒤 양안치재에서 희생당했다. 같은 시기에 봉산리 신학준 일가족 3명이 경찰에 연행되어 총살당했다.
이상 원주지역에서 확인된 민간인 집단학살사건을 종합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분 |
사건발생일 |
희생장소 |
희생자 수 |
가해조직 |
비고 |
보도연맹 |
1950. 6. 30. |
판부면 가리파고개 |
30 |
6사단 |
|
형무소 |
1950. 6. 30. |
원주읍 뒷고개 |
180 |
6사단 |
|
부역 |
1950. 10. 2. |
동화리 세고개 |
94 |
6사단 |
강원도경찰국 |
1‧4후퇴 |
1950. 12. |
양안치재 |
경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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