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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고령지역사건 종합

2013.07.08 15:34

인권평화연구소장 조회 수:3555

<국민보도연맹사건>

 

고령에서는 경찰서로 연행된 주민들이 후퇴 직전의 경찰에 의해 1950년 8월 3일 고령읍 회천교 백사장과 금산재, 운수면 화암금굴 등지에서 집단 살해되었다. 적어도 3차례 이상 각기 다른 장소에서 학살이 있었다. 당시 고령경찰서 경찰관의 증언에 의하면 고령군 국민보도연맹원의 규모는 200명이 넘었다.

한편, 국군 17연대(연대장 백인엽) 소속 군인이었던 윤씨(윤덕로)는 고령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있던 보도연맹원 70~80명을 고령읍의 낙동강변에서 사살했다고 증언했다.

고령읍 금산재에서도 100여 명의 희생자가 있었는데, 고령경찰서 특공대장 최씨(최순기)는 97명의 보도연맹원들이 금산재에서 고령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게 학살당한 사실에 대해 증언했으며, 이는 현장에서 살아나온 보도연맹원의 진술에서도 확인된다.

 

<부역혐의 피해>

 

고령지역에서는 국군 수복 후 부역혐의사건이 발생하던 시기에 주민이 희생된 사건이 발생했다. 고령경찰서는 1950년 10월 우곡면 객기리 서갑도 등 주민들을 감금했다가 총살했다. 우곡면 객기리에서는 국민보도연맹원 9명이 집단 희생되었다. 서갑도는 국민보도연맹원이었으나 대구로 피난하여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되지 않았으나 국군 수복 후 객기리로 돌아왔다가 경찰에게 희생된 것이었다.

 

구분

사건발생일

희생장소

희생자 수

가해조직

비고

보도연맹

1950. 8. 3.

회천교 백사장 등

200

17연대 등

부역혐의

1950. 10.

고령경찰서